동양권에서는 사람이 사는 집을 가족의 평안과 후손의 번영에 영향을 미치는 대상물로 생각한다. 조화 관점에서 자연을 최대한 훼손하지 않고 산과 강 등 입지를 고려해 집을 짓는다. 서양 건축물은 크고 웅장하다. 전망이 탁월한 곳을 선호해서 집을 지을 때 자연을 망가뜨리는 경우도 있다. 이처럼 인간도 자연의 일부라는 동양 사고와 인간 중심이라는 서양 사고는 차이가 있다.
의학에서도 동서양 차이가 있다. 서양의학은 '항생' 중심이다. 질병원인 '균'을 죽이는 것이 목표다. 1928년 영국 미생물학자 알렉산더 플레밍이 항생제 페니실린을 개발, 이를 시작으로 서양의학은 눈부시게 성장했다. 근대 의료시설부터 제약 산업 태동까지 세계 의료는 서양의학이 주도했다.
'균'을 죽여서 수많은 질병을 정복했다. 그러나 부작용도 있었다. '좋은 균'까지 없앴다. 순백의 옷이 빨리 더러워지는 것처럼 균을 없앤 인간의 몸은 약해지기 시작했다. 항생제가 듣지 않는 슈퍼박테리아가 등장했고, 면역력이 떨어져서 다양한 질병을 일으켰다. 크론병, 아토피 피부염 등 현대인이 자주 걸리는 병도 균을 죽이면서 환자가 급속도로 늘었다.
전통 동양의학은 '균'도 자연의 일부라고 여겼다. 우리 몸속은 물론 토양, 공기 등 자연 전반에 걸쳐 공존하는 존재다. 조화가 깨지는 순간 문제가 발생한다. 좋은 균을 이용하려는 시도도 활발했다. 우리 전통음식인 김치, 된장 등 발효식품을 대표로 들 수 있다.
다양한 미생물 유전 정보를 뜻하는 마이크로바이옴도 동양 사고와 맞닿는다. 마이크로바이옴은 균을 분석해서 인간 질병을 예측해 예방하고 치료한다. 균과의 조화를 추구하며, 좋은 균을 늘려서 면역력을 높인다. 우리가 사는 환경, 먹거리 등 균에 노출되는 모든 영역에서 좋은 균을 늘리는 방법을 연구한다. 인체 미생물이 대사질환, 면역질환, 암, 치매 등과 연관성이 깊다는 연구 결과가 나오면서 주목을 더 받고 있다.
'항생'을 핵심으로 한 현대의학이 풀지 못한 난제를 '상생'이 핵심인 마이크로바이옴으로 해결하는 시도가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동양식 시도가 실제 서양에서 활발하다. 수천 년 이어 온 우리 삶의 지혜와 가치관이 빛을 발할 때지만 그러하지 못하다. 주도권을 내줄 판이다.
문제가 있다. 연구개발(R&D) 투자는 물론 상업화 제도 지원이 미비하다. 세계 7대 바이오 강국 실현을 외치지만 정작 우리나라는 내세울 만한 게 없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조상의 삶이 녹아 있는 마이크로바이옴에 주목해야 한다. 이제는 바이오 분야에서 무기를 만들어야 한다.
[전자신문 CIOBIZ] 정용철 의료/바이오 전문기자 jungyc@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