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덕이 만난 생각의 리더]<129> '블록체인 보안관' 전하진 자율규제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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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하진 위원장은 “신뢰받는 블록체인 환경을 만들기 위해 회원 자율규제와 관련해 표준 규제안을 만들고 윤리헌장도 제정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윤성혁기자 shyoon@etnews.com

전하진 한국블록체인협회 자율규제위원장은 생각에 걸림이 없는 영원한 청년이다. 전 위원장을 2일 오후 서울 중구 삼일대로 블록체인협회 사무실 건물에서 만났다. 요즘 초미 관심사인 블록체인 자율 규제안이 궁금해서다. 벤처 1세대로 한글과 컴퓨터 사장, 19대 국회의원을 지낸 그는 백팩을 메고 청바지, 운동화 차림으로 나타났다. 잘 나가던 벤처기업인이나 정장 차림의 국회의원 시절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자신의 묘비명을 작성해 놓고 사는 그는 여전히 일에는 열정적이고 생각은 창의적이었다. '무보수 블록체인 보안관' 역할을 맡은 그와 2시간여 이야기를 나눴다.

-자율 규제안은 언제 확정하나.

▲조만간 자율규제안을 확정해 발표한다. 기존안에 자금세탁방지 내용을 강화할 방침이다. 오늘(2일) 거래소위원회를 발족했다. 거래소 입장을 대변할 사람을 자율규제위원회에 포함시키기로 했다. 자율규제안과 관련해 전국은행연합회 측과 협의를 했고 많은 의견을 들었다. 자율규제안에 반영할 점은 반영하겠다.

-세부 자율 규제안 내용은.

▲아직 확정한 안이 아니어서 구체적으로 말하기는 어렵다. 다만 신뢰받는 블록체인 환경을 만들기 위해 회원 자율규제와 관련해 표준 규제안을 만들고 윤리헌장도 제정할 방침이다. 불공정거래를 규제하고 이용자 보호 조치와 업무 단계별 준수사항을 준비 중이다. 분쟁 조정시 이를 해결할 분쟁조정위원회와 가상화폐 취급업자 운영위원회 규정도 만든다. 시스템 안정과 정보보화에 대한 규정도 제정한다. 이런 자율규제는 투자자들이 신뢰할 수 있는 블록체인 생태계를 만들기 위한 조치다.

-자율규제위원회는 어떻게 구성하나.

▲위원장 1명에 규제 위원은 10명 내로 구성한다. 블록체인과 가상화폐 전문가와 법률가, 회계, 재무전문가, 회원 대표, 당연직으로 정보보호위원장과 분쟁조정위원장이 들어간다.

-위원장은 상근인가.

▲비상근이고 무보수다(웃음). 임기는 2년이다.

-규제안을 마련하면 회원사 실태 조사를 실시하나.

▲그렇다. 1차로 회원사에 대한 서류조사를 실시한다. 일단 서류를 통해 회원사별로 적격 여부를 가린다. 서류 심사가 끝나면 곧바로 2차 현지 실사를 나간다. 기술과 장비, 보안시스템, 고객 정보보호 실태 같은 프로세스 전반을 점검한다. 4월까지 실태조사를 끝낼 계획이다. 거래소는 해킹 방지 시설과 고객 신원 확보, 자금 세탁 방지 같은 제반 요건을 갖춰야 한다. 거래소가 기준을 갖춘 제도권 안으로 편입하면 투자 안정성도 보장할 수 있다. 관건은 투자자들로부터 신뢰를 확보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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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 항목과 기준은.

▲세부 항목과 기준은 협회에서 만들고 있다. 합격선도 정한다.

-기준에 미달하면 어떻게 해야 하나.

▲미비사항을 보완해 다시 자율규제위원회 심사를 받아야 한다. 협회가 정한 기준을 통과해야 회원사로 등록해 영업을 할 수 있다.

-임직원 윤리 규정은.

▲미공개 정보를 이용한 행위나 시세 조종 같은 불공정 행위를 하는 일을 막기 위해 협회, 임직원에 대한 윤리 규정도 만든다.

-규제안에 보태고 싶은 게 있나.

▲'코드가 법이다'라는 말이 있다. 나는 코드에 의한 자율 규제시스템을 강조한다. 블록체인 철학은 분산과 투명한 정보공개다. 따라서 코드에 의한 신뢰기반 확보가 진정한 자율규제라고 생각한다. 자율규제를 하면 법적인 부담이 덜하다. 법이 거래소를 통제하는 건 블록체인 철학과 맞지 않다. 마치 우마차회사가 자동차를 통제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젊은 CEO들이 이런 의견에 동의한다.

-위반시 제재 내용은.

▲제명과 자격 정지, 경고, 주의 등이 있다.

-가상화폐 거래실명제 이후 가상계좌를 발급받은 거래소는 몇 개인가.

▲기존 가상계좌를 발급받은 거래소 외에는 아직 계좌를 발급받은 거래소는 없다. 이른 시일 안에 자율규제안을 확정하고 실태조사를 완료해 이 문제를 해결할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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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좌 발급제한으로 어떤 문제가 발생하나.

▲가상화폐나 블록체인 세상은 한국에만 존재하는 게 아니다. 가상화폐는 정부가 규제한다고 해서 해결될 일이 아니다. 가상화폐는 사이버 세상에 존재하지만 실제 거래가 이뤄지고 있다. 한국에서 거래를 못하게 하면 자금이 외국으로 빠져나간다. 이른바 풍선효과다.

-정부는 가상화폐공개(ICO) 전면 금지 입장인데.

▲마찬가지 현상이다. 국내에서 ICO를 금지하면 싱가포르나 스위스 같은 외국으로 나간다. 얼마 전 싱가포르에서 ICO를 한 기업인을 만난 적이 있다. 스위스는 인구 2만명인 추크에 크립토밸리를 만들었다. 이곳은 '연봉 1억원 이상의 현지인 3명 고용' 같은 몇 가지 조건만 갖추면 ICO에 아무 규제가 없다. 이로 인해 세계 가상화폐 절반이 추크에서 ICO를 한다고 한다. 기존 시각으로 새로운 산업을 통제하는 일은 불가능에 가깝다.

-해외 투자유치를 위한 방안은.

▲사이버 세상은 입구와 출구가 있다. 어느 나라보다 편하게 들어갈 수 있는 입구를 잘 만드는 게 관건이다. 나라마다 제도가 다르다. 어느 나라는 문을 닫고 어느 나라는 문을 활짝 열어놓고 있다. 편한 입구를 만드는 나라가 사이버 세상을 지배한다. 우리가 투자자와 데이터를 공유하고 그들의 신뢰를 얻는다면 아프리카에서도 한국 거래소를 이용할 수 있다. 그렇게 해야 한국이 세계시장을 주도할 수 있다.

-관련 법 제정은.

▲가상거래소 성격을 규정하고 거래소 요건 등을 담은 관련법을 제정해야 한다. 이런 조치가 가상화폐 건전한 생태계를 구축하는 일이다. 현재 정부와 다수 국회의원들이 관심을 갖고 논의를 하고 있다. 이미 발의한 법안도 있다. 협회 차원에서 법 제정을 위해 공론화 작업을 하고 있는데 구체적 안을 마련하고 있다. 법 제정으로 한국이 블록체인이나 가상화폐에서 주도권을 행사할 수 있는 획기적인 계기를 만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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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자에게 당부 말은.

▲지난 날 인터넷 거품 당시 닷컴이라는 단어만 내세우면 돈이 몰렸다. 투자하면 돈을 번다는 기대치만 보고 묻지 마 투자를 했다. 신기술이 등장하면 초기에 큰 기대를 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기대치에 기술이 미치지 못하면 거품현상이 생긴다. 그래도 인터넷 기술을 발전했다. 기술과 기대 수준이 수평을 이룰 때 1차 기술혁명이 곡선을 그린다. 기술과 패러다임 변화를 이해하고 자기 책임으로 투자해야 한다. '묻지 마'식 투자는 안 된다.

-사이버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신뢰다. 업체가 코드에 기반을 두고 신뢰를 쌓아 시장에서 인정을 받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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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꿈은.

▲국회의원시절부터 추진하던 최첨단 정보통신기술(ICT)과 문화, 비즈니스가 융합한 첨단자족도시인 시티(SiTi)를 구현하는 일이다. 처음에는 선빌리지로 불렀다. 현재 재단을 설립해 매월 한번 씩 전문가들과 포럼을 열고 있다.

-생소한 데 어떤 도시를 말하나.

▲삶터와 일터, 배움터를 모두 갖춘 첨단자족도시다. SiTi는 독립적인 기반시설과 도시기능을 갖추고 자아 요구를 충족하며 사는 환경이다. ICT와 사물인터넷(lot) 같은 첨단 기술을 내제한 주거도시다. 이미 세르비아와 크로아티 국경 지대에 레버랜드라는 인구 2만여명 규모의 도시를 조성했다. 기존 산업체계 경계를 허물고 공동가치를 만들어 이익을 공유하는 새로운 자급자족 공동체 생태계다. 한국은 ICT와 반도체, 프로세스 등 새로운 도시 구현의 모든 자원을 갖고 있다. 한국이 신도시 개발이나 도시 재생의 리더가 될 수 있다.

-이점이 뭔가.

▲싸게 토지개발을 할 수 있다. 첨단 기능을 도시에 제공하며 공동체 수익기반을 조성해 상호 자아실현을 구현할 수 있다. 첨단도시 기능을 갖추기 위해서는 스마트시티 기본 플랫폼에 대한 기본계획 수립이 시급하다. 여기에 신뢰와 공유 기술인 블록체인 기술과 연결, 특정지역에서 시범사업을 추진하거나 북한에 새로운 주거환경을 제공하면 미래 주거환경의 메카로 발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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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우명은.

▲좌우명은 '즐겁고 의미 있게 살자'다. 그동안 좌충우돌하면서 살았다.

전 위원장은 인하대를 졸업하고 연세대 대학원에서 마케팅 석사 학위를 받았다. 올해 서울벤처대학원대학교에서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새로운 주거환경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88년 100만원으로 픽셀시스템을 설립, 대표로 일하다 외환위기 사태를 맞아 매각 위기에 있던 한글과컴퓨터 대표를 맡아 회사를 살렸다. 벤처 1세대로 벤처기업협회 부회장을 거쳐 서강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겸임 교수로 일했다.

19대 국회의원과 K밸리포럼대표, 스마트포럼 대표를 역임했고 현재 자유한국당 국민공감전략위원장과 에스라이프포럼 의장으로 활동한다. 자랑스러운 신한국인 대통령상과 대한민국 의정대상 등을 받았다. 저서로 '즐기다 보니 내 세상'이 있다. 그가 작성해 놓은 묘비명은 '자신의 작은 날갯짓으로 변화되는 세상을 즐겼던 로맨티스트 전하진 잠들다'다.


이현덕기자 hdlee@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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