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수 부재로 사상 초유의 사태를 겪고 있는 삼성전자의 운명이 다음 달 5일 갈린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2심 재판 결과에 따라 경영 리더십 부재가 이어질지 '뉴 삼성'을 위한 새 도약에 나설지 향방이 결정된다. 업계는 무죄는 어렵지만 형량이 줄거나 집행 유예로 풀려날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점치고 있다.
30일 법원에 따르면 2월 5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2심 선고를 앞두고 31일 서울고등법원에서 선고 공판 방청권 응모와 추첨을 진행한다. 1심 선고 공판 방청권 경쟁률이 15대 1인 만큼 2심에서도 국민들의 관심이 뜨거울 것으로 전망된다.
다음 달 5일 선고 공판의 핵심 쟁점은 이 부회장이 삼성전자와 삼성생명의 지배력 확보를 위해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부정 청탁을 했는지 여부다. 박영수 특검팀은 네 차례 공소장을 변경하며 포괄적 청탁을 위해 삼성이 뇌물을 줬다고 주장했다. 1심 재판부가 삼성이 최순실 측에 건넨 돈과 영재센터 후원금 등 89억원만 뇌물로 판단한 데 비해 특검은 미르·K스포츠재단 출연금과 정유라씨 승마 지원에 대해 제3자 뇌물과 단순 뇌물 혐의를 추가했다.
삼성 측은 특검 주장을 전면 반박했다. 승계를 위한 청탁 등 사전 작업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주장이다. 현재 지분으로도 이건희 회장과 비슷한 수준의 경영권을 행사할 수 있는 이 부회장이 굳이 청탁을 통해 인위의 승계 작업을 추진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이 부회장은 2심 결심 공판에서 “삼성 리더로 인정받는 일은 대통령이 아니라 대통령 할아버지가 도와줘도 할 수 있는 게 아니다”면서 “제가 왜 뇌물을 주고 (경영권 승계를) 청탁하겠느냐”고 말할 정도로 승계 작업을 위한 청탁이 없었다고 강조했다.
법조계는 특검이 부정 청탁에 대한 확실한 증거를 내놓지 못했다고 보고 있다. 논리와 근거가 빈약하다는 의견이다. 이에 따라 1심 5년보다 형량이 줄거나 집행 유예가 될 것이란 관측도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
반면에 이 부회장이 5년형을 유지하거나 형량이 더 무거워진다면 삼성 입장에서는 최악의 상황을 맞게 된다. 총수 부재로 굵직한 인수합병(M&A)이나 투자에 소극 대응을 하면서 미래 성장 동력을 잃게 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반도체 호황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르는 상황에서 삼성전자가 새 먹거리를 찾을 수 있을지도 불분명하다.
일부 외신은 삼성의 글로벌 리더십도 불투명해질 것이라고 관측했다. 이 부회장은 아시아 다보스포럼이라는 '보아오 포럼'의 상임이사직과 이탈리아 자동차업체 피아트크라이슬러(FCA)의 지주회사인 '엑소르'의 사외이사직도 내놓았다.
업계 한 관계자는 “이 부회장이 '옥중 경영'으로 총수 부재 피해를 최소화한다고 하지만 경영 일선에 있을 때에 비해 한계는 분명 있을 것”이라면서 “2심 재판 결과에 따라 삼성전자의 운명이 갈릴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내다봤다.
권동준기자 djkwo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