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모어 댄 무어` 시대 개막… 후방산업 대격변 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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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시장에 `모어 댄 무어(More than Moore) 시대`가 열렸다.

`모어 댄 무어`는 반도체 미세회로 공정으로 집적도를 높인 `무어 이론`과 달리 후공정 패키징 공정 혁신으로 반도체 성능을 높이는 개념이다. 2년마다 반도체 집적도가 두 배 증가한다는 인텔 창업자 고든 무어의 이론을 넘어서는 새로운 패러다임이다. 회로 선폭 미세화가 난관에 부닥치면서 `무어 이론`이 사실상 폐기됐다. 이 때문에 `모어 댄 무어` 전략이 반도체 업계 핵심 경쟁력으로 떠올랐다. 반도체 업계가 패키징 시장까지 진출하면서 기존의 후공정 업체는 물론 장비, 재료 등 후방산업의 대격변도 예고됐다.

미국 애플은 최근 출시한 아이폰7 시리즈 두뇌인 A10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를 전작 A9과 동일한 16나노 공정으로 생산했다. A10에 내장된 트랜지스터 숫자는 33억개, 실리콘 칩(Die) 면적은 125㎟다. 이는 약 20억개의 트랜지스터가 내장된 A9칩(104.5㎟)에 비해 20%가량 확대된 것이다. 지금까지 아이폰 시리즈에 탑재된 A시리즈 칩 가운데 면적이 가장 넓다. 애플은 실리콘 칩 면적 확대에 따른 약점을 패키지 기술로 보완했다.

대만 파운드리 업체 TSMC는 독자 통합 팬아웃(InFO) 기술로 애플 A10을 패키징했다. 업계에서 통용되는 기술 명칭은 팬아웃웨이퍼레벨패키지(FoWLP)다. FoWLP 기술을 활용하면 반도체 패키지 기판용 인쇄회로기판(PCB)이 필요 없다. 전체 칩 생산 원가를 크게 절감할 수 있다. 입출력(I/O) 포트도 원활하게 늘릴 수 있어 성능도 좋아진다. 패키지 면적과 높이도 줄일 수 있다. 애플에 이어 퀄컴, 삼성전자 시스템LSI사업부 같은 주요 AP 업체는 2017~2018년부터 FoWLP 기술을 적극 도입할 계획이다.

TSMC에 선수를 뺏긴 삼성전자는 삼성전기와 함께 내년 상반기 FoWLP에서 원가 효율성을 한 단계 끌어올린 팬아웃패널레벨패키지(FoPLP) 기술을 상용화할 방침이다. 외주 반도체 패키지 테스트(OSAT) 업계도 대응에 나섰다. 앰코테크놀로지는 내년 하반기에 인천 송도 신공장 K5에서 FoWLP 기술인 스위프트(SWIFT) 양산 체제를 구축한다. 대만 ASE는 FoWLP 기술을 보유한 미국 패키징 업체 데카테크놀로지에 투자를 단행했다.

모어 댄 무어 시대에는 협력사, 고객사가 경쟁사로 바뀌는 대격변도 불가피할 전망이다. OSAT는 TSMC나 삼성전자 같은 종합반도체(IDM) 업체가 패키지 영역을 침범할까 전전긍긍이다. 인쇄회로기판(PCB) 업계는 위기다. FoWLP 기술이 확산되면 반도체 패키지용 고부가 기판 사업은 자연 축소된다. 삼성전기가 FoPLP 사업을 시작하면 앰코 등 패키지 기판 고객사를 경쟁사로 전환하게 된다.

장비, 재료 등 후방산업계도 바삐 움직인다. AP시스템, 이오테크닉스, 피에스케이 등이 관련 장비 개발을 마치고 공급을 준비하고 있다. 패키징 관련 주요 재료인 에폭시몰딩컴파운드(EMC)를 다루는 업체도 이 시장 진입을 노리고 있다. 일본 나가세 같은 재료 업체는 TSMC InFO 공정용 재료를 독점 공급하면서 업계의 관심을 받고 있다.

FoWLP와 함께 뜨는 기술은 전자파간섭(EMI) 차폐다. 칩 성능이 높아지면서 칩 간 전자파 간섭이 최근 전자산업계의 골칫거리로 떠올랐다. 애플은 아이폰에 탑재된 각종 시스템반도체와 메모리칩에 EMI 차폐 기술을 적용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모어 댄 무어 시대가 본격 개막함으로써 반도체 생산 관련 전·후방산업계에 큰 변화의 바람이 불어닥치고 있다”고 말했다.


한주엽 반도체 전문기자 powerusr@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