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에 따르면 국내 전자책 시장 규모는 지난 2008년 1189억원에서 지난해 3444억원 규모로 성장했다. 국내 스마트 기기 보급률이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점에 비춰 올해는 지난해 규모를 크게 뛰어넘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이러한 가운데 지난 3월 미국 전자책 시장의 중요한 이슈이던 애플과 출판사 간 담합에 대한 연방대법원의 판결이 선고되면서 미국 법무부가 제기한 소송이 5년 만에 종결됐다.
미국 법무부는 2012년 4월 애플과 맥밀런, 하퍼콜린스 등 5개 출판사가 담합해 전자책 가격을 인상함으로써 전자책 독자에게 수백만 달러의 부담을 안겼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5개 출판사 가운데 하퍼콜린스 등 3개 출판사는 담합을 인정하고 법무부와 합의했다. 맥밀런 등 2개 출판사는 법무부가 제기한 의혹에 맞서 싸우겠다고 밝혔다가 소송이 시작되기 직전에 법무부와 합의했다. 결국 담합 의혹을 받은 6개 회사 가운데 애플만 합의를 거부하고 소송을 진행했다.
다만 애플은 2014년 소비자 집단소송에서 원고들과 합의하면서 배상금액을 법무부와의 소송 결과에 연동, 연방대법원에서 패소할 경우 4억5000만달러의 합의금을 지급하겠다는 입장을 취했다. 애플은 1심과 2심에서 패소했고, 연방대법원이 상고를 기각해 패소를 확정함에 따라 거액의 배상금을 지급하게 됐다.
2009년 애플이 아이패드로 전자책 시장에 진출할 당시 9.99달러는 전자책 시장에서 상징과 같은 단어였다. 아마존은 출판사로부터 전자책을 구입해 소비자에게 판매하는 방식으로 사업을 진행했다. 판매가는 대체로 9.99달러였다. 이를 총판 방식(wholesale model)이라고 한다. 아마존의 이 정책은 전자책 가격을 낮추는 효과를 가져왔고, 독자로 하여금 이보다 비싸게 파는 전자책 서점에서 발길을 돌려 아마존으로 오게 했다.
애플은 전자책 사업을 시작하기 위해 출판사들과 접촉하는 과정에서 아마존보다 가격을 인상하겠다고 제안했다. 당시 미국 출판사들은 아마존이 책정한 전자책 소비자 판매가격(9.99달러)에 불만을 품고 있던 상황이었다. 애플은 아마존 등 기존 전자책 서점과의 가격경쟁을 피하고자 했으며, 출판사들은 아마존의 9.99달러 정책을 끝내고 가격을 인상하기를 원해 서로 간 이해관계가 일치하게 된 것이다.
애플과 출판사 간 협정에 두 가지 새로운 방식이 도입됐다. 하나는 대리점 방식(agency model)이다. 기존의 총판 방식과 달리 소비자 판매가격은 출판사가 결정하는 한편 애플은 출판업자 대리인으로서 이미 결정된 소비자 판매가격을 적용해 책을 판매하고 일정 비율을 수수료로 수취할 뿐이다.
애플과 출판사들의 합의에는 최우선고객 조항(MFC:Most-Favored-Consumer Clase)도 포함됐다. 이 조항에 따라 애플은 다른 전자책 서점이 자신보다 더 싸게 판매하지 못하도록 하면서 최저 판매가격에 따라 전자책을 판매할 권리를 보장받게 됐다. 결국 전자책 가격은 14.99달러까지 상승하게 됐고, 아마존의 시장점유율은 95%에서 65%까지 하락했다.
소송에서는 애플과 출판사 간 합의를 독점금지법(Sherman Act)에 따라 엄격히 금지되는 수평적 가격 담합으로 볼 것인지, 출판사의 재판매가격 유지 행위로 볼 것인지가 중요한 쟁점이 됐다. 후자로 볼 경우 합리 원칙(Rule of Reason)이 적용돼 친경쟁 효과가 반경쟁 효과보다 크다면 위법이 아니기 때문이다.
법원은 애플 주도로 이뤄진 수평적 가격 담합이라고 판결했다. 이 판결에 대해서는 상반된 평가가 있다. 비판론으로는 디지털 콘텐츠 시장에 진입하려는 신규 기업의 경영을 위축시킨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시장지배 사업자인 아마존이 아직은 가격을 낮게 유지하고 있지만 앞으로 언제든지 소비자 권리를 침해할 수도 있다는 문제점도 지적된다. 미국 법원이 담합을 인정했을 뿐 `MFC 조항이 삽입된 대리점(Agency) 모델`의 경쟁제한 효과에 대해 판단하지 않은 점도 아쉬움으로 남는다.
온라인 시장과 정보기술(IT) 발달로 종전에는 볼 수 없던 새로운 유형의 경쟁 제한 행위가 나타나는 가운데 위법성 판단을 위한 기준 정립의 필요성이 있다. 한편으로는 우리나라도 소비자 단체소송을 도입, 실질적 소비자 피해 구제 방안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손계준 법무법인 지평 변호사 kjson@jipyo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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