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사우디아라비아 세관에서 한국산 에어컨이 통관 보류되는 일이 벌어졌다. 사우디 정부가 세계무역기구(WTO)에 통보하지 않고 에너지 효율 라벨 규정을 바꾼 탓이다. 우리 정부가 나서 통관 문제를 해결했지만 ‘보이지않는 무역장벽’으로 불리는 해외 기술규제를 실감했다.
중동·중남미 등 신흥·개도국이 무역기술장벽(TBT)을 높이면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이들 국가는 선진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취약한 자국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기술규제를 강화했다.
2일 국가기술표준원에 따르면 지난해 개도국의 신규 TBT 통보 건수는 총 1223건으로 전체의 80%를 차지했다. TBT는 수입 제품에 차별적인 기술규정·표준·인증 등을 적용하는 것이다. WTO는 무역 장애를 방지하기 위해 회원국 기술규제 변경시 사전에 통보하도록 했다.
문제는 통보 규정 위반시 직접 제재가 없다보니 사전 통보하지 않는 국가가 늘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 정부가 최근 1년여 간 발굴한 타국 미통보 사례만해도 25개국 138건에 이른다.
노르웨이는 지난 2월 유해 화학물질 사용 제한 규정을 사전통보와 유예기간 없이 시행했다. 이 때문에 제한 규정을 상회하는 물질이 포함된 한국산 일부 가전과 건축재 수출이 어려운 상태다. 정부는 노르웨이에 공식이의를 제기하고 양자협의에 들어갔다.
칠레의 TV 소비전력 기준과 에너지 라벨링 규제 변경 과정에서도 애로가 발생했다. 칠레는 6월부터 TV 소비전력 기준을 강화하는데 자국 시험소 인증을 거치도록 했다. 한국 기업으로서는 칠레 인증 획득에 적지않은 시간과 비용을 들여야 한다. 다행히 우리 정부 요청으로 한국 내 시험성적서(KOLAS)도 인정하기로 합의됐다. 함께 시행할 예정이었던 TV 소비전력 라벨 부착 의무화는 차후로 연기됐다. 우리 기업의 대 칠레 TV 수출 규모는 연간 4330억원에 달한다.
국표원은 신흥·개도국 TBT 강화에 대응하기 위해 지난달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WTO TBT위원회에 참석해 무역장벽 해소를 요구했다. 국표원 관계자는 “회의에서 최근 기술규제 통보가 급증하는 중국·인도·중동·중남미 국가와 이에 대응하려는 다른 회원국 간 팽팽한 신경전이 벌어졌다”고 전했다.
국표원은 앞으로 TBT위원회에 적극 참여하면서 시급한 현안이 발생하면 해당국을 직접 방문해 문제 해결을 시도할 방침이다.
※자료:국가기술표준원

이호준기자 newlevel@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