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 최초 통일국가인 진(秦)은 불과 16년 만에 멸망했다. 극단적인 공포정치가 단초가 됐다. 진나라 법은 매우 엄격해 규율을 어기면 사형으로 다스렸다. 진나라 말기 우후죽순처럼 번진 봉기는 폭정에 항거한 것이었다.
하지만 처음부터 명분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처음 봉기한 진승(陳勝)은 병역에 소집됐으나 기한에 맞춰 집결지에 도착하기 힘들어지자 `어차피 죽을 바에는 한번 봉기해 보자`며 난을 일으켰다. 한고조 유방(劉邦)도 같은 사례다. 부역 인부 호송을 맡았던 그는 기한을 지키지 못하자 인부들을 데리고 산으로 도망쳤다. 이들은 향후 진나라를 멸망시킨 한나라의 첫 군대가 됐다.
휴대폰 부품업체인 A사는 한 대기업으로부터 신기술 개발을 제의 받았다. 각고의 노력 끝에 원하는 기술을 개발, 특허를 출원했다. 그런데 날벼락이 날아들었다. 대기업은 “누구 마음대로 특허를 출원하느냐”며 기술을 통째로 넘길 것을 요구했다. 기술을 넘기지 않으면 납품할 수 없다는 협박이 이어졌다. 사태를 무마하기 위해 한참을 애썼지만 허사였다. A사는 결국 다른 거래처를 찾아야만 했다.
디스플레이 장비 업체인 B사는 세계가 깜짝 놀랄 신기술을 개발했다. 대기업에서 투자 제의가 들어왔다. 그런데, 요구가 황당했다. 기술만 넘기고 B사는 뒤로 물러서 약간의 기술료만 챙기라는 것이었다. 같은 시기에 일본 대기업도 투자를 제안했다. 조건이 판이했다. 함께 세계적인 기업으로 커나가자는 의지를 보였다. B사는 당연히 일본 기업과 손을 잡기로 했다.
대기업 횡포가 여전하다. 겉으로는 `상생(相生)`을 외치면서도 속으로는 불공정 거래가 지속되는 모양이다. 하지만 이에 항거해 밖에서 활로를 찾는 솜씨 좋은 중소기업도 늘고 있다. 손을 내미는 외국 기업도 적지 않다. 다행스러운 일이다. 다만, 이렇게 해외로 빠져나간 기술이 언제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지 몰라 걱정이다. 지금이라도 힘으로만 억누르다 멸망한 진나라 역사를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삼을 일이다.
김순기기자 soonkkim@et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