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소재 업체들, 한국행 러시…2차전지 · OLED 한국 주도 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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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택하라면 한국이다.”

자국 내 제조업 몰락의 상처를 입은 소재 강국 일본 업체들이 최근 들어 한국행 러시를 강화하고 있다. 2차전지와 능동형(AM)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등 우리나라가 주도하고 있는 차세대 성장 산업이 타깃이다. 과거와 다른 모습이라면 자국 내 고객사 기반인 제조업이 추락 일로를 걸으면서 한국 시장에 사운을 걸 정도로 큰 비중을 두고 있다는 점이다.

20일 업계에 따르면 일본 유수의 소재 업체들은 근래 2차전지·OLED 등 신시장을 겨냥, 대한 투자를 대폭 강화하고 있다. AM OLED 패널 양산 경쟁력은 세계 시장의 80% 이상을 차지하고 있고, 2차전지 셀은 근래 1~2년 새 한국이 일본을 추월했다.

일본 테이진은 국내 필름 가공 전문업체인 CNF와 공동으로 충남 아산에 2차전지 분리막 합작법인(테이진CNF코리아)을 신설한 뒤 오는 6월 양산에 착수할 예정이다. 테이진이 2차전지 분리막 양산 투자를 단행하는 곳은 한국이 처음이다.

앞서 일본 도레이도넨과 도다공업은 국내 2차전지 고객사 수요에 적극 대응하기 위해 지난해 하반기부터 국내 투자를 대폭 강화하고 있다. 도레이도넨기능막은 작년 7월 경북 구미 2차전지 분리막 공장 증설 투자에 착수한 뒤 올 하반기 양산에 돌입할 계획이다. 증설 규모는 연산 4000만㎡로 기존 생산 능력(3000만㎡)의 배 이상이다.

도다공업은 삼성정밀화학과 2차전지 양극재 합작법인인 STM을 설립하고 지난해 9월부터 삼성SDI 울산 사업장 인근에 생산 라인을 구축 중이다. 연산 2500톤 규모의 `NCM` 계열 2차전지 양극재 생산 능력을 갖춰 내년 초 본격 양산에 들어간다.

일본 2차전지 소재 업체들이 한국에 `본거지`를 옮기는 것은 과거 반도체·LCD 분야와는 사뭇 다르다. 반도체, LCD는 우리나라가 1위에 올랐음에도 한참 지난 다음에야 국내 진출이 이루어졌으나 2차전지는 우리나라가 1위에 오르자마자 일본 기업들의 진출이 가시화됐기 때문이다. 자국 내 제조업 몰락 과정에서 한국의 무서운 저력을 체험한 결과라는 평가다.

일본 T사 관계자는 “반도체·LCD 산업에서 일본 고객사에 머물렀다 실패한 경험을 부인할 수 없다”면서 “2차전지 시장에서는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분명한 승부수를 던진 것”이라고 평가했다. T사는 2차전지 소재 사업의 성패가 한국에 달렸다고 보고, `베팅`에 가까운 투자를 단행 중이다.

AM OLED 시장에서 이 같은 현상은 더욱 뚜렷하게 감지된다. 삼성모바일디스플레이를 필두로 우리나라가 전 세계 AM OLED 패널 시장을 사실상 독점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 이데미쓰코산은 LG디스플레이를 최대 고객사로 삼고 다음 달 경기도 파주에 AM OLED 유기재료 공장 착공에 들어간다. 국내 사업장은 현재 자국 내 생산 능력인 연산 1.6톤보다 많은 2톤으로 출발해 많게는 16.6톤 규모로 늘리기로 했다.

이데미쓰코산 관계자는 “향후 증설 투자와 연구개발센터 설립을 포함해 한국 내 투자를 대폭 강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 소재 업체들의 한국행에는 대지진 여파 등으로 인한 해외 생산 거점 이전과 중국 시장 교두보 전략의 의미도 있다. 이신두 서울대 교수는 “한국은 지리적 요충지인데다 일본과 중국이 각각 취약한 기술·가격 경쟁력을 지니고 있다”면서 “첨단 소재 업체들이 갈수록 한국을 중요한 거점으로 여기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서한기자 hse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