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가고 기술이 발전하면 생활은 더욱 편리해진다. 간혹 디지털 시대를 맞아 아날로그적 기술을 그리워하긴 해도 작은 불평 정도다. 필름 카메라와 원고지를 그리워하는 예술인도 있지만 취향의 차이일 뿐이다. 하지만 어떨 때 기술도 거꾸로 가는 경우가 있다.
컴퓨터를 예로 들어보자. 내가 어렸을 적 처음 보았던 개인용 컴퓨터는 작고 가벼운 본체를 갖고 있었다. 애플2와 MSX 등은 본체와 키보드, 파워서플라이가 일체형이었고 가벼웠다. 당연하게도 이때 컴퓨터엔 냉각팬이라는 게 없었다. 시간이 흐르고 컴퓨터 CPU가 펜티엄을 넘어가면서 서서히 냉각팬이라는 게 달리기 시작했다. 고성능 데스크톱PC는 전원만 키면 공장의 작업용 기계가 돌아가는 듯 한 우렁찬 소음을 내보낸다. 그야말로 ‘업무용 기계’ 라는 인상과 존재감을 사방에 과시한다.
스티브 잡스는 선불교의 명상에 심취했다고 한다. 명상을 방해하는 이 소음을 싫어해 애플2때부터 지금의 매킨토시까지 소음을 최소화한 설계를 강조했다. 이 때문일까. 아이폰과 아이패드엔 일체의 팬이 없다. 맥북에어도 거의 소음이 없다. 스마트폰과 스마트패드(태블릿PC)는 그래서 조용하고 효율성 높은 기기가 됐다.
이런 기술적 진보 역시 다시 후퇴할 수 있다. 무엇보다 한정된 공간에서 칩이 높은 성능을 보일수록 많은 열을 낸다. 모바일 칩은 싱글코어에서 듀얼코어로 넘어왔다. 그리고 올해 쿼드코어로 진화한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나오는 열을 식히기 위해 다시 소형 ‘냉각팬’이 등장할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이다.
냉각팬은 여러 가지로 불편함을 준다. 전력소모가 늘어나고 기기 내부로 먼지유입을 늘린다. 물리적인 부품이므로 고장률도 높다. 무엇보다 안 좋은 점이 소음이다. 기기를 사용할 때마다 들리는 소음을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모바일 기기는 여태까지 냉각팬 없이 진보했다. 운용체계나 앱 최적화가 잘된 덕분도 있지만 주요한 원인은 사람들이 모바일 기기에 그다지 큰 기대나 요구가 없었기 때문이다. 포토샵이나 3D 온라인게임 같은 건 집에서 PC로 수행했다. 그런데 점차 모바일 부문이 진보하면서 아예 노트북을 부분적으로 대체하는 역할까지 요구한다. 당연히 고성능이 필요해지고 멀티코어가 적용된다. 결국 냉각팬을 달아 성능을 더 올리느냐, 아니면 팬을 거부하고 급격한 성능 올리기를 포기하느냐의 갈림길에 섰다.
개인적 의견으로 모바일 기기만은 끝까지 냉각팬 없이 발전하는 길을 가줬으면 한다. 그나마 소음으로부터 자유로워진 기술적 진보가 다시 후퇴하는 것을 보고 싶지 않다. 지금은 PC조차 팬 없이 방열판만으로 무소음을 만들자는 움직임이 있다. 이럴 때 새 스마트폰을 켜 우렁찬 굉음과 함께 기계 돌아가는 소리를 듣는 시대가 된다면 이 얼마나 이상한 세상인가.
안병도 IT평론가 catchrod@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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