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까지만 해도 낙관적이었다. 작년 내내 힘들었다가 연말부터 시장이 살아나기 시작했다. 한동안 뚝 끊겼던 장기 공급계약 소식도 간간이 들려왔다. 올해 초 만난 관계자는 “이제 하늘에 햇빛이 좀 보이기 시작하는 것 같다”고 했다. 캄캄하고 긴 터널을 지나 출구에 다다랐다고 생각했다. 당시 한 업체 임원은 “CEO가 얼마 전 해외출장지에서 바이어와 함께 한 라운딩에서 홀인원을 기록했는데, 아무래도 올해는 행운이 따를 것 같다”고 했다. 정부나 시장조사 기관의 시장 전망도 밝았다. 이전에 비해 성장률은 다소 낮아졌지만, 여전히 70% 이상의 성장이 예상됐다. 태양광 시장 이야기다.
지난 3월 일본 후쿠시마 원전 폭발사고는 신재생에너지에 대한 기대를 한껏 부풀게 했다. 일본 총리가 공식석상에서 2020년까지 전력부문 재생가능에너지 비율을 20%까지 끌어올리겠다고 공언했다. 태양광 발전 보급에 역점을 뒀다. 2030년까지 일본 전역 1000만개 지붕에 태양광 패널을 설치하겠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독일도 원전 정책을 버리고 신재생에너지 분야에 지원하겠다고 했다.
좋은 분위기는 오래가지 않았다. 재정위기가 닥친 유럽 국가들이 태양광 보조금을 줄이기 시작했고 미국 태양광 기업들은 잇달아 파산보호 신청을 했다. 미국 오바마 정부가 지원한 태양광 기업이 파산을 했고 파장은 확산하고 있다. 반짝했던 태양광 경기가 다시 부진의 늪으로 빠져들었다.
국내 시장에도 반향이 왔다. 어려웠다던 작년, 그리고 올 상반기까지만 해도 쉬쉬하던 기업들이 얼마 전부터는 아예 대놓고 죽는 소리를 한다. 적어도 겉으로는 힘든 내색을 하지 않던 기업들이 하나 둘 ‘커밍아웃’을 했다.
‘지금 회사가 흔들흔들 합니다. 저도 어떻게 해야 할 지 잘 모르겠습니다.’ 지난주 전자신문이 개최한 ‘그린오션포럼2011’에서 만난 한 기업 임원의 말이 비수처럼 가슴에 꽂혔다. ‘태양광 기업 모두 힘든 과정을 겪고 있지만 50%가량의 기업이 생사의 기로에 서있을 것’이라는 이 임원의 예상이 틀렸기만 바라는 심정이다.
차라리 커밍아웃이 낫다. 어려운 시황에 공감하고 타개책을 찾는 편이 훨씬 생산적이다.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글로벌 태양광 시장은 정부의 전폭적인 재정지원을 받은 중국 기업이 저가와 물량 공세로 주도권을 쥐고 있다. 곳곳에서 덤핑을 하는 바람에 폴리실리콘에서부터 잉곳·웨이퍼, 태양전지, 모듈에 이르는 모든 밸류체인 제품 단가가 곤두박질치고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1㎏당 50달러 선을 유지하던 폴리실리콘 가격이 40달러 이하로 떨어졌다. 화석연료로 전기를 만드는 화력발전 단가와 태양광 단가가 같아지는 그리드패리티의 기준으로 삼았던 태양광 모듈 가격도 1W당 1달러 이하로 떨어질 정도다.
지금의 가격하락은 분명 비정상적이다. 어려운 시기다. 그렇다고 지금의 비정상적인 상황에서 포기하면 미래는 없다. 지난 20여년 동안 반도체 시장은 집적도가 한 단계 상승할 때마다 이전 세대 제품 가격이 하락하면서 성장세를 이어왔다. 첨단 기술이 범용 기술로 바뀌는 사이클을 거듭하면서 비정상적인 가격도 정상화했고 시장은 성장해 왔다.
태양광 시장도 마찬가지다. 지금 비정상적으로 낮은 가격이 태양전지 효율을 높이고 모듈 가격을 낮추는 기술혁신을 거치면서 정상적인 가격으로 자리 잡아가기 마련이다.
대기업이 태양광시장에 잇달아 뛰어들어 천문학적인 투자를 하는 데는 분명 이유가 있다. 지금 당장 시장은 어렵지만 태양은 내일도 어김없이 뜰 것이고 절대 사그라지지 않는 영원한 자연 에너지기 때문이다.
주문정·그린데일리 부국장 mjjo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