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절곤 무술의 일인자 ‘리샤오룽’, 바바리코트가 잘 어울리는 ‘저우룬파’, 풍치가 빼어난 ‘저우린’. ‘이소룡’ ‘주윤발’ ‘계림’의 외래어표기법이다. 1986년 외래어표기법이 개정된 후 25년이나 지났지만 여전히 생소하다. 표기법이 대중 언어습관으로 정착하려면 훨씬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외래어표기법이란 외래어를 우리글로 표기하는 법칙이다. 우리말과 음운체계가 다른 언어에서 차용한 외래어를 통일된 표기법으로 적어 혼란을 막으려는 취지로 만들어졌다. 본디 외래어표기법은 외국인이 아닌 그 나라 국민을 위해 제정된다. 우리 외래어표기법은 언어주체인 우리 국민 정서나 언어습관을 반영해야 마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반세기가 지나도록 정착되지 못한 것은 분명 문제가 있다.
지난 8월 말 ‘짜장면’이 해금(?)됐다. 국립국어원은 그동안 짜장면을 외래어로 규정해 ‘자장면’으로 표기할 것을 권고해왔다. 하지만 짜장면을 과연 외래어로 취급해야 하는지 곱씹어볼 일이다. 지금의 짜장면은 1905년 인천 차이나타운의 공화춘이란 식당에서 처음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중국에도 짜장면은 있으나 우리 것과는 확연히 다르다. 우리 음식이 된지 100년도 넘었다. 이를 외래어로 간주해 중국발음에 가깝게 표준어로 정한 것이 이른바 ‘자장면’이다. 하지만 중국인들조차도 짜장면으로 발음하니 이 기준도 틀렸다.
외래어표기법은 우리 국민의 혼란을 막자고 만들었지만 지금의 중국지명이나 인명 표기법은 오히려 혼란을 준다. 규정은 중국인명의 경우 과거인과 현대인을 구분해 종전 한자음대로 표기할 것인지, 중국어 표기법으로 표기할 것인지를 구분한다. 과거와 현대의 구분기준은 1911년 일어난 신해혁명이다. 그래서 콩쯔, 멍쯔가 아닌 공자, 맹자로 쓰고, 호금도가 아닌 후진타오로 쓴다.
일본인명은 과거 현대인 구분 없이 일본어 표기법을 따르도록 했다. 한자 문화권인 중국, 일본, 대만의 지명은 해당국 표기법을 따른다. 예외 규정도 있다. 우리나라 한자음으로 읽던 관행이 있다면 이를 허용한다. 도쿄와 동경, 타이완과 대만, 황허와 황하 등이다. 참으로 혼란스럽다.
이웃국가 중국, 일본은 외래어를 표기할 때 특별한 경우를 빼곤 자국민 언어습관을 존중한다. 외래어표기법은 주변국이 아닌 자국민을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상대국 표기법을 존중해 수십년 간 우리 국민이 바뀔 것을 강요한다.
세종대왕은 우리식 한자발음과 표기법을 모든 백성이 두루 읽고 쓸 수 있도록 훈민정음을 창제했다. 또 발음기관을 상형화하여 소리 나는 대로 적을 수 있는 과학적인 틀을 제시했다. 한글날은 올해로 565돌을 맞는다. 훈민정음 해례본 예의편의 첫머리처럼 ‘서르 사맛디 아니할쌔(서로 통하지 못한다)’가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건 아닌지 돌이켜 생각하게 된다.
최정훈 정보산업부장 jhchoi@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