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11월, 미국 스탠퍼드대 강당.
선마이크로시스템스 창업자이자 ‘실리콘밸리 마이더스 손’으로 유명한 비노드 코슬라(Vinod Khosla)는 학생들에게 창업가 정신을 강조하며, “젊은 시절을 부디 헛되이 보내지 말라”고 충고한다. 그는 “창업은 목표가 무엇이든 위대하다”며 “애송이 선배들도 했는데, 여기 앉아 있는 여러분이 못할 게 뭐가 있느냐?”고 물었다. 그리고 “세상을 뒤엎을 쓰나미를 일으켜라!(Create the Next Tsunami)”고 질타했다.
‘왜 스타트업(Start-Up)인가?’ 5일 열린 ‘스타트업 포럼 2011’이 내세운 주제다. 올해 행사에 패널로 참가한 배기홍 뮤직쉐이크 이사는 스탠퍼드대 학창 시절에 경험한 10여년 전 강연을 잊을 수 없다. 지금도 비노드의 포효하는 목소리가 귓가에 쟁쟁하다. 그 때문일까? 현재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스타트업 투자가로 활동 중인 그는 창업가의 최우선 자질로 ‘운명을 스스로 결정하는’ 용기와 ‘성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꼽는다. 창업 후배들에게 “중요한 것은 학벌과 기술력이 아니다”며 “외부의 비난과 손가락질에 신경 쓰지 말고, 자신이 가고자 하는 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굳은 신념과 의지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세상이 정말 달라졌다. 더 이상 젊은 기업가가 창업하는 데 큰 자본과 비용이 필요치 않다. 카페에 앉아 노트북 코드만 꽂으면 새로운 서비스와 비즈니스 모델을 만드는 게 가능하다. 젊은이들끼리 서로 뜻만 맞으면 바로 스타트업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졌다. 애플·구글·트위터·페이스북 등 세계를 주름잡는 글로벌 인터넷 서비스들도 한때 이웃집 차고에서 시작한 스타트업이었다. 스마트와 소셜 열풍을 타고 새로운 비즈니스를 창출한 기업 대부분은 역사가 5년이 채 안 되는 신생 업체들이다.
새로운 산업, 특히 첨단 비즈니스 분야는 더욱 그렇다. 창의적인 ‘제작자(창업가)’가 ‘아이디어(사업계획)’를 내면 유능한 기술자와 투자자(엔젤)들이 모인다. 스타트업 메커니즘에 따라 새로운 프로젝트에 도전하는 것이다. 그래서 대학을 중퇴하고도 차고에서 시작해 성공하는 사람과 기업이 등장할 수 있다. 조그만 스타트업 기업이 오래된 큰 회사와 정부, 연구소, 대학, 투자회사들과 서로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새로운 아이디어와 서비스를 만들어 낸다. 이런 모습이 바로 역동적인 스타트업 생태계다. 세계가 스타트업에 열광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새로운 신화를 만들어낼 스타트업 생태계가 존재하지 않는다. 글로벌 여론조사기업인 갤럽이 세계 36개국 2만6168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창업에 대해 긍정적 이미지를 갖느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한 한국 사람은 30%에 불과했다. 미국(73%), EU(49%), 중국(40%), 일본(32%)과 비교해 가장 낮다. 한국에서 창업은 ‘도전’이 아니라 ‘도박’에 가까운 모험으로 인식되는 것이다.
스타트업에 대한 생각과 정의는 사람마다 다르다. 위키피디아 사전에도 컴퓨터 부팅(Booting)과 새로운 프로젝트 착수(Project commissioning), 새롭게 출범한 회사(recently formed company) 등 다양한 의미로 풀이된다. 결국 새로운 시장을 창조하든, 이미 존재하는 시장에 후발주자로 진출하든, 무언가를 새롭게 시작하는 것은 모두 스타트업이라는 의미다.
이제 ‘왜 스타트업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명확해졌다. 우리가 스타트업해야 할 이유는 딱 한가지다. 지금 이 순간을 헛되이 보내지 않으려면, 무언가 새롭게 시작하는 ‘스타트업’ 외에는 다른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주상돈 경제정책부 부국장 sdjo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