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통신위원회가 대통령 직속 기구로 출범한 지도 어언 3년 6개월이 넘어섰다. 이 4년차라는 시간은 한 기구가 조직문화(일하는 방식)를 일궈 성과를 올리기엔 좀 부족하다. 그러나 한 정권의 임기로 볼 때 적지 않은 기간이기에 조급해 하는 사람들도 꽤 보인다. 도대체 그 서두름의 기저(基底)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가. 새삼스럽게 설명할 필요가 없는 상식적인 화두이지만 몇 가지를 예시해 보자.
첫째, 방통위의 정체성(identity) 문제이다. 방통위를 가리켜 “방송도 아닌 것이, 통신도 아닌 것이”라는 말이 나돈 지 오래다. 지상파와 맞먹는 거대 종편 4개사가 등장하고 방송이 일군 한류가 세계화하는 마당이다. 방송업무만 남기고 통신은 타 부처로 이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이다. 그렇지 않아도 4개 부처로 나뉜 정보통신기술(ICT) 정책에 대한 걱정이 태산 같다.
둘째, 방통위원 선임방식의 개선이다. 너무 정치적, 정파적 차원에서 이루어진다. 따라서 위원 간의 전문적 영역이나 시너지 효과도 뒤떨어져 보인다. 특히 며칠씩 밤새워 연구 검토해야 할 중대사까지도 정파적 대리전으로 몰고 가는 모습이 역력하다.
셋째, 방통위의 이미지·브랜드를 제고하는 프로젝트 수행이다. 방통위가 국민 속에 나쁜 이미지를 심은 적도 그리 없지만, 그렇다고 강렬한 인상을 남긴 정책도 없었던 것 같다. ‘민간기구’처럼 나서서 시장에 좋은 이미지를 축적해야 고부가적 브랜드를 생성할 수 있다. 행정만 강조하다 보면 현장과 멀어져 간다. 방송통신은 철저히 현장 중심의 생명체이다.
이 밖에도 방통위가 앞장서서 해야 할 일은 한 두 가지가 아니다. 방송의 예를 들어 말하면, 프로젝트 예산이 적지 않은데도 한국방송의 백년대계를 위한 중장기적 사업은 흔치 않은 것 같다. 장기간 연구해 추진할 ‘한국방송제도’, 다년간 내공을 쌓아야 할 ‘한국방송박물관’, 더 나아가 한국방송개시 100년 준비 등이 바로 그 사업이 돼야 할 것이다.
한국방송박물관만 해도, 방통위가 앞장서 방송협회와 해결해야 할 한국방송계의 자존심이 걸린 사업이다. 한국방송은 ‘세상의 창’으로서 전 세계에 조국을 드높인 한류의 원천임에도 불구하고 박물관 하나 건립하지 못하고 있다. 그 역사적 유물들을 어떻게 할 것이며 반세기, 한 세기가 지난 후 우리는 후손들에게 무엇으로 위대한 선대였음을 증명할 것인가.
방통위는 스스로 홈페이지에 공약한 바와 같이 “방송의 독립성을 보장하고 공익성을 확대하는데 힘쓰기”를 염원한다. 비록 정권에 따라 달라지는 세상이라지만, 범연(泛然)한 자세로 역사에 남을 큰일을 수행하길 당부한다.
김성호 객원논설위원·광운대 정보콘텐츠대학원장 kshkbh@kw.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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