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즘] 검은 백조(白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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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재정위기가 확산되면서 불황형 헤지펀드가 인기를 끌고 있다. 헌데 그 헤지펀드 명칭이 흥미롭다. ‘블랙 스완(검은 백조)’이다. 언어론적으로 ‘검은 백조’는 존재할 수 없는 조어(造語)다. 양립할 수 없는 수식어가 공존하기 때문이다. ‘짧은 롱다리’ ‘하얀 흑마’ 등이 같은 경우다.

 현실에서는 좀 다르게 적용된다. 백조는 흰색 고니의 다른 이름이다. 예전에는 알려진 모든 고니의 몸 색깔이 흰색이라 검은 고니는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여겨왔다. 이에 서양에서는 ‘검은 백조’를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은 어떤 것’ 또는 ‘고정관념과는 전혀 다른 어떤 상상’이라는 은유적 표현으로 사용해 왔다.

 독일 극작가 마르틴 발저(Martin Walser)는 1964년에 저술한 희곡 ‘데어 슈바르쯔 슈반(Der schwarze Schwan:검은 백조)’에서 ‘나치 SS친위대’를 ‘검은 백조’에 비유했다.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잔인했던 그들의 만행을 고발하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호주에서 검은색 고니가 발견된 1967년 이후 ‘검은 백조’는 ‘도저히 일어날 것 같지 않은 일이 일어나는 것’으로 의미가 사용되기 시작했다. 이를 미국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 교수가 2007년 월가의 허상을 파헤친 저서 ‘더 블랙 스완(The Black Swan)’을 통해 경제 분야로 연결시켰다. 헤지펀드 ‘블랙 스완’의 명칭도 이 책 제목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최근 들어서는 ‘예상치 못했지만 세계 경제를 뒤흔든 사건’으로 확대 해석된다. 2008년 벌어진 리먼 브러더스 파산 사태가 세계 금융권을 마비시켜 현재의 글로벌 경제위기를 몰고 온 것이 대표적인 사례라는 것이다.

 경제학자들은 혹시 모를 ‘블랙 스완’에 대비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들은 일본 대지진과 쓰나미는 물론이고 저축은행 사태도 ‘블랙 스완’으로 인식한다. 하지만 아직 어느 누구도 이를 피할 수 있는 방법은 속 시원하게 제시하지 못한다. ‘블랙 스완’ 출현을 예견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존재하지 않는 어떤 것’ 또는 ‘도저히 일어날 것 같이 않은 일’을 의미하는 ‘검은 백조’를 미리 파악한다는 자체가 모순(矛盾)인 때문이다.


김순기 경인취재팀 차장 soonkkim@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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