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즘]천수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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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수답(天水畓)은 벼농사에 필요한 물을 빗물에만 의존하는 논이다. 주변에 물을 끌어서 댈 저수지 또는 강이 없는 곳이다. 농사짓기에 매우 척박한 땅을 의미하는 ‘천수답’ 이야기를 최근 벤처캐피털업계 고위 임원으로부터 들었다. 한국 벤처캐피털 현실이 그렇다는 것이다. 업계에서 20년 가까이 종사한 그는 우리나라가 벤처(캐피털) 중요성에 대해서는 공감하면서도 정작 시스템은 크게 부족하다고 강조했다. 살아가기가 너무 힘들다는 토로였다.

 업계에 이름을 알리는 방법은 두 가지다. 막대한 돈을 펀딩(조달)하거나 또는 투자해 높은 수익률을 거두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둘 다 ‘꽉’ 막혀 있는 상황이다. 벤처버블이 사라진 후 민간자금이 벤처에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자금 조달이 안 된다.

 어렵게 조달해 벤처펀드를 만들어 투자하더라도 이번엔 자금 회수(Exit)가 막막하다. 미국에서는 회수 절반을 크게 넘는 인수합병(M&A)이 국내에서는 이상하리만큼 부진하다. 기업공개(IPO) 시장(코스닥)만을 바라봐야 하는데 더 녹녹치 않다. 높아진 벽에 쉽사리 문을 열지 않는다. 어렵게 시장에 올려도 사상최고치를 넘나드는 유가증권시장과 달리 코스닥시장은 과거 한창때와 비교해 5분의1도 안 된다. 피투자사인 벤처기업에서는 회사가치가 낮게 평가됐다며 상장을 꺼린다. 대개 7년인 펀드 만기를 앞둔 벤처캐피털업계 담당자로서는 피가 마른다.

 최근 예산권을 쥔 기획재정부가 벤처펀드 자금줄인 모태펀드에 더 이상 돈을 대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1조원 이상 재원을 투입했으니 이제는 알아서 굴러가야 한다는 입장이다. 업계에서는 모태펀드 재원이 최소 2조원은 돼야 한다며 재고(再考)를 요청한다.

 과거, 우리나라는 수리개발사업을 꾸준히 펼쳐, 천수답 면적이 크게 줄었다. 막대한 예산 지원 없이는 불가능했다. 정부는 벤처캐피털산업이 천수답 형국을 지나쳤을 것으로 본 듯하다. 충분히 물을 대 줬으니 이제는 알아서 하라는 정부, 여전히 물이 부족하다는 업계. 이견차는 분명하다. 고충도 이해하지만 업계가 한 목소리를 내는 이유를 정부는 다시 한 번 귀 기울여야 한다. 벤처캐피털업계에서 나오는 ‘천수답’소리가 부끄럽다.


김준배기자 joon@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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