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용만으로 신체능력 증폭, 무기용 개발 중
지난 2009년 인기 영화배우 이병헌씨가 출연해 화제를 모은 할리우드 영화 ‘지.아이.조-전쟁의 서막’. 1억7500만달러라는 천문학적 제작비가 투입된 만큼 관객 눈길을 끄는 특수효과가 가득하다.
주인공들이 프랑스 파리 테러를 막기 위해 테러리스트들과 벌이는 추격 신은 이 영화 액션의 백미다. 주인공들은 ‘외골격 로봇’이라는 특별한 장비를 온몸에 둘러 이색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외골격 로봇은 우리에게 친숙한 ‘로보캅’ 혹은 ‘아이언맨’이 사용하는 전투용 특수장비다. 인간 관절과 근육이 내는 힘을 수십 배에서 수백 배까지 증폭시켜 초인적인 힘을 내게 해준다. 지.아이.조 주인공들이 자동차보다 빨리 달리고 수십 층 빌딩을 단숨에 뛰어오르는 것도 외골격 로봇의 힘을 빌린 덕분이다.
◇‘입는 로봇’ 상용화 박차=외골격 로봇이 공상과학(SF) 영화에 나오는 먼 미래의 일처럼 보이지만 이미 각국에서는 상용화를 추진 중이다.
최근 요시유키 산카이 일본 쓰쿠바대학 교수는 ‘HAL’이라는 외골격 로봇을 개발, 하지 마비 환자의 산악 등반을 도왔다. 당사자인 우치다 세이지씨는 28년 전 교통사고로 걷는 능력을 완전히 상실했지만 생애 처음으로 프랑스 몽생미셸을 방문하게 됐다. 그가 ‘입은’ HAL은 다리 외부에 착용하면 다리 힘을 열 배까지 높여준다. 피부에 붙인 센서가 뇌에서 나오는 전기신호를 감지하고 다리가 움직일 방향을 판단, 가랑이나 무릎 관절 부분 모터가 움직여 보행을 도와주는 구조다.
최근 일본 사이버다인(Cyberdyne)이 대량생산을 시작했으며 일본에서는 전국 약 70개 병원과 시설에서 200여대가 재활훈련 등에 투입돼 효과를 검증받고 있다. 영화에서 보는 것처럼 초인적인 힘을 내는 것은 아니지만 신체 능력을 잃은 환자들에게는 그보다 더 귀중한 장비로 사용될 수 있다.
◇미국, 무기화 개발 선두=일본이 환자 재활이나 장애인 보조기구로서 외골격 로봇 개발에 앞선다면 미국은 일본보다 훨씬 먼저 외골격 로봇 무기화에 나섰다.
실제로 외골격 로봇 개념이 대두된 것은 지난 1963년으로 적을 단숨에 제압할 무기로 구상되기 시작했다. 미 육군 군사무기 연구자였던 서지 자루드니 박사는 착용자에게 괴력을 발휘하도록 하는 ‘로봇 슈트(robot suit)’ 개념을 정립해 논문으로 발표했다. 당시에는 이를 구현할 기술이 전무했던 탓에 그의 생각은 한낱 공상으로 치부됐다.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잊혀가던 로봇 슈트는 30여년이 흐른 지난 2000년 재조명된다. 초정밀 센서와 대용량·고집적 마이크로칩 등이 일반화되면서 로봇 슈트 개발 가능성이 확보됐기 때문이다. 미 국방부 산하 고등연구계획국(DARPA)은 7년간 7500만달러를 투입, ‘인간능력 강화용 외골격 개발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이를 계기로 아이언맨 초기 모델 격인 외골격 로봇 개발이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다. 비밀 연구실 차원에서 연구를 지속해왔던 개발자들도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냈다.
세계 최대 군수업체인 미국 ‘록히드 마틴’ 역시 외골격 로봇 무기화에 많은 연구비를 쏟고 있다. 이 회사가 개발한 외골격 로봇 ‘헐크(HULC)’는 일반 철보다 가벼우면서 강도가 높은 타이타늄으로 제작됐다. 작은 등짐 모양의 장비를 착용하면 90㎏ 이상의 짐을 지고 시속 16㎞ 속도로 움직일 수 있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다양한 종류의 화기를 장착할 수 있으며, 냉난방 시스템·센서 등을 부착할 수도 있다. 1개 배터리는 3마력의 힘으로 1시간을 걸을 수 있다. 공격을 받은 병사들에게 좀 더 유연한 동작이 필요할 때는 헐크를 30초 안에 벗을 수 있다.
록히드 마틴 측은 “헐크를 착용한 병사가 부상병을 신속하고 편하게 퇴각시킬 수 있고 후퇴 시 무게 때문에 적지에 두고 와야 하는 장비도 옮겨 올 수 있다”고 설명했다. ‘슈퍼 군인’을 가능케 하는 이 장치는 개발 초기 당시부터 큰 관심을 받아왔다. 그러나 헐크는 배터리를 뺀 부분의 무게만 24㎏으로 착용하지 않은 상태에서 이를 들고 이동하기 쉽지 않다. 배터리는 개당 1.8㎏이다. 현재 전력화 또는 실전배치 단계로 보기는 어렵고 운반용 도구 이상으로 발전하기에는 좀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할 전망이다.
◇국내도 관련 특허 급증=국내에서는 아직 미국·일본처럼 본격 상용화 단계의 외골격 로봇이 선보이지는 않았지만, 관련 특허 출원은 급증하고 있다. 한국형 외골격 로봇을 보게 될 날도 머지않은 셈이다.
특허청에 따르면 지난 20년간(1990~2009년) 근력증강 로봇과 관련해 총 77건이 국내에서 특허출원(실용신안 포함)됐다. 연도별로는 지난 1990~1994년 1건에서 2005~2009년에 62건이 출원돼 최근 출원이 급격히 증가했다. 특허 출원된 외골격 로봇 분야는 상지착용형·하지착용형·파워 어시스트운용 제어기술 3분야로 나눌 수 있다.
국내 출원은 하지착용형(38건)·파워 어시스트운용 제어기술(28건) 분야에 연구가 중점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이러한 기술 동향은 로봇 기술이 가장 발달한 미국과 일본의 특허출원에서도 유사하게 나타나고 있다. 근력증강 로봇을 포함한 전체 로봇 분야의 세계시장이 오는 2018년께 2200억달러 정도의 시장을 형성할 것으로 예상된다.
안석현기자 ahngija@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