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캐피탈 해킹, 농협 전산망 마비 등 금융권 대형 전산사고가 잇따라 터지면서 금융권 정보기술(IT) 부문의 총체적 부실이 도마에 올랐다. 금융권이 그동안 경영 효율 논리로 IT 부문의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추진한 결과가 돌이킬 수 없는 ‘인재(人災)’로 되돌아왔다는 비판이다.
모바일뱅킹 등 금융서비스는 갈수록 첨단화하고 해킹 위협도 커지고 있지만 금융권 IT 부문 인력은 2000년 초반보다 오히려 줄어든 것으로 확인돼 금융대란 사고가 잇따를 것이라는 불안감이 고조되고 있다.
13일 현대캐피탈 해킹 사고가 수습되기도 전에 농협 전산망 장애로 농협 고객이 입출금거래는 물론이고 인터넷·모바일뱅킹을 전혀 이용하지 못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전날 12일 오후 5시께 발생한 전산 장애는 하루를 훌쩍 넘기고도 이날 밤 늦게까지 일부 기능이 복원되지 않아 고객 항의가 빗발쳤다. 그동안 크고 작은 금융권 전산 장애가 있었지만 이날 사고는 거의 이틀간 전산시스템이 불통돼 사상 초유의 ‘금융대란’으로 번졌다.
전문가들은 현대캐피탈 해킹에 이어 이 같은 사태가 벌어지자 그동안 쉬쉬해오던 금융권 IT 부문 구조적 모순이 ‘시한폭탄’처럼 터졌다고 입을 모았다.
금융IT 컨설팅 전문업체 투이컨설팅 김인현 대표는 “현대캐피탈과 농협은 우리 금융권이 안고 있는 IT 역량 약화 문제를 상징적으로 보여 주는 사건”이라며 “경영진이 예산 절감 논리를 앞세워 IT 핵심 인력을 키우기보다는 외부 아웃소싱만 늘려간 결과가 대규모 사고로 돌아왔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한국은행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은행 IT인력은 2000년 4100여명에서 2009년에는 3876명으로 6.3%가량 줄었다.
그동안 인터넷뱅킹·모바일뱅킹 등 신규 서비스와 차세대 시스템 도입 바람으로 전산자원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 IT인력 수요가 늘어난 것과는 정반대 현상이 벌어진 셈이다.
같은 기간 은행 전체 인원은 8.2% 증가해 유독 IT 부문 구조조정이 심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3년여 전부터는 하나은행·신한은행 등 주요 금융사는 아예 계열사 IT인력을 한곳에 모아 IT지주회사 격인 ‘IT 셰어드(shared) 서비스센터’를 만들면서 인력을 더욱 줄이는 상황이다.
익명을 요구한 금융사 IT 부문 한 간부는 “IT 셰어드센터는 증권·은행·보험 등 계열사 인력을 한곳에 모아 필요시 인력을 탄력적으로 파견하는 제도여서 이론적으로 한 명이 두세 기업의 업무를 볼 수 있는 구조”라며 “하지만 이 같은 발상은 업종별 IT업무를 범용적 관점으로 바라본 것이어서 갈수록 업종별 전문성이 떨어져 업무 50% 이상을 아웃소싱 기업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양상”이라고 말했다.
사고가 터진 농협의 경우에도 자체 핵심 인력보다는 서버를 공급한 한국IBM 기술인력에게 전적으로 의존하다보니 대처가 늦어졌다는 지적이다.
또 다른 금융사 엔지니어는 “금융권 IT 예산은 차세대 시스템을 구축할 때는 크게 늘어났다가 시스템 구축이 끝나면 최소 운영비만 지원하는 식”이라며 “이 때문에 중요 보안 솔루션 등의 투자가 예산 심의를 통과하지 못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고 전했다.
한국은행 통계에서도 차세대 시스템 구축이 마무리 단계였던 2009년 은행 IT투자는 1조2000억원에 달했으나 그 이후 2010년에는 무려 39%나 급감한 7700억원에 머물렀다.
김인현 대표는 “금융권 최고경영진은 IT를 비용 관점에서 접근하는 경향이 강한데 이번 사태에서 보듯 IT 투자는 한번 터지면 돌이킬 수 없는 재난 투자 관점으로 전환해야 한다”며 “이런 발상의 전환이 없으면 핵심인재 부재, 보안 인프라 부족 등으로 금융 전산 시스템은 매일 살얼음판을 걸을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장지영기자 jyajang@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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