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상생을 해야하는 또 다른 이유

 방은주/경인취재팀장 ejbang@etnews.co.kr

 

 이번엔 ‘강도’가 다른 것 같다.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상생’ 이야기다. 중소기업 사장들에게 “(상생이) 이번에도 한차례 지나가는 소나기겠죠”라고 물으면 “이번엔 다른 것 같다”는 답이 꽤 많이 돌아온다. 이명박 정부가 처음 상생을 들고 나왔을 때 솔직히 시큰둥했다. 또 ‘그 소리구나’했다. 역대 정부치고 상생을 강조하지 않은 정부가 없기 때문이다. 이전 정부도 마찬가지다. 시간을 잠시 2005년 5월로 되돌려보자.

 노무현 대통령이 집권 2년차를 막 넘긴 시점, 대기업 총수와 중소기업 대표들이 청와대에 모였다. 대중소기업 상생협력회의를 열기 위한 것이었다. 당시 노 대통령은 “우리 경제가 잘 되기 위해서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서로 협력해야한다”면서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상생을 강조했다. 2년 뒤인 2007년에는 청와대에 다시 모여 성과를 점검하기도 했다. 이때에도 노 대통령은 승자독식으로는 시장의 번영을 뒷받침할 수 없다며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상생을 지적했다. 대통령의 ‘큰 목소리’에 놀란 대기업 총수들은 이구동성으로“(상생에서) 많은 성과를 냈으며 앞으로 더욱 협력하겠다”고 다짐했다.

 이로부터 1년이 채 되지 않아 이명박 새 정부가 출범했다. 이명박 정부 역시 출범 초기부터 대중소기업간 상생협력을 들고 나왔다. 임기 후반을 넘긴 지금도 상생에 대한 강조는 계속되고 있다. 정운찬 전 국무총리를 위원장으로 한 동반성장위원회가 지난해 말 출범했다. 지경부 장관에 내정된 최중경 청와대 경제수석의 일성도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동반성장에 주력하겠다”는 것이었다. 올해 대통령 신년사에도 상생은 빠지지 않았다.

 재계 신년인사회에서도 이 대통령은 대중소기업 동반성장을 다시 한번 지적했다. 재계도 ‘정부의 상생’에 속속 화답하고 있다. 재계 맏형인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은 신년하례식에서 “20년전부터 상생에 대해 말해왔다”면서 상생은 단순히 영세 중소기업을 돕는 것이 아니라 대기업을 위한 것라고 말했다.

 LG 등 다른 대기업들도 저마다 중소기업과의 상생을 주요 경영기치로 내걸고 있다. 이렇듯 역대 어느 정부보다 상생 깃발이 높게 휘날리고 있지만 일말의 불안감이 여전하다. 재계 총수가 ‘20년간 어쩌지 못했다’고 고백할 정도로 쉽지 않은 과제이기 때문이다.

 상생은 우리가 가야할 길이다. 대기업이나 중소기업의 희생이 아닌 ‘상생’ 말이다. 글로벌 시장에서 대기업의 승승장구 한 데는 국내 중소기업의 헌신과 공헌이 있었기 때문이다.

 얼마전 인천의 한 세계적 부품업체 임원은 이런말을 했다. 그는 “중국업체가 무섭게 따라오고 있어 몇년안에 세계 1위 자리를 내줄 것 같다”면서 “저가에만 몰입된 국내 대기업이 중소기업 기술을 중국업체에 넘겨주는 바람에 우리같은 중소기업이 피해를 보고 있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작년 한해 베스트셀러 중 하나는 마이클 샌던 하버드대 교수가 쓴 ‘정의란 무엇인가(Justice)’였다. 이런 말이 나온다. ‘정의로운 사회는 좋은 삶을 다 같이 고민하는 것’이라는. 상생 역시 좋은 삶을 다같이 고민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상생을 정의라 불러도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