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칼럼]연변에서 발견한 북한의 가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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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 동향정보분석팀장.

10년 전 중국 연볜의 한 기관을 방문한 적이 있다. 당시 서가에 꽂힌 북한이 발행한 분야별 북한과학기술용어사전을 보고 북한을 재평가하게 됐다. 용어 연구는 과학기술의 발전 토대이자 기초다. 북한이 이 영역의 일을 상당한 수준까지 이뤄놓은 것을 본 이후 그들의 가능성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전까지 별로 기대하지 않았던 북한의 과학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갖게 된 계기이기도 하다. 이후 나의 지속적 관심사는 북한이 뭘 잘 하는 가였다. 정부의 남북협력과제 지원으로 북한의 과학기술을 직간접으로 조사하는 일을 하면서 우리가 북한을 일방적으로 지원하기보다 북한이 잘 하는, 가능성이 있는 영역을 남북협력의 우선 대상으로 해야 한다는 신념을 갖게 됐다. 과거 북한 정부는 글로벌 동향에 맞춰 여러 IT 및 과학 분야에 관심을 기울였다. `단번도약`을 얘기하면서 정보기술(IT)을 내세웠고, 생명공학기술(BT)을 강조해 토끼 복제 배양 성과를 발표하기도 했고, 나노기술(NT)에 관심을 가지면서 STM(주사터널현미경) 개발을 보도하는 등 이른 바 `과학기술 3T종자론`을 대내외적으로 과학기술발전의 주역으로 선정, 투자의 우선순위에 뒀다. 하지만 현재 3T중 북한이 자랑할 만한 것이 거의 없다. 섣부른 투자로는 경쟁력을 가질 수 없었던 것이다.

북한이 가진 역량과 가치를 제대로 살릴 때 북한이 새로운 길을 갈 수 있을 것이다.

과학기술 및 관련 분야를 중심으로 바라본 북한의 가능성은 몇가지가 있다. 우선 북한이 내놓을 수 있는 첫 번째는 교육 받은 인력이다. 전세계적으로 후진국의 공통점중 하나는 정규교육을 받지 못해 문맹률이 높다는 것이다. 하지만 북한은 특이하게

교육 수준이 높은 인재들이 많다. 이들을 다양한 영역에 투입할 수 있으므로 생산성을 높일 수 있는 기초가 되며, IT 등에서도 고급인력으로 활용할 수 있다.

다음으로 한의학(북한에서는 고려의학이라 부른다)을 들 수 있다. IT와 기술 융합해

개발한 금빛말 등 체질분석기 등은 한국에서도 쓰이고 있다. 북한은 양약 부문에서는 화학원료를 사용하지 못해 열악하나 천연 및 자생 약용식물을 이용한 한방치료제 개발 기술은 일부가 수준급에 있다. 북한이 가진 광물자원도 활용해야 한다. 이는 북한이 교역의 대가로 지불할 수 있는 수단이 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마그네사이트, 희유금속 등은 첨단소재산업 등에 활용도가 높으므로 남북한이 단순 채굴 이상의 협력이 가능하다. 하지만 현재 남북 협력은 한겨울이다. 그러나 우리가 포기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바로 통일을 위한 준비다. 일전에 지방의 한 명문대학에서 북한과학기술에 대해 특강을 한 적이 있다. 마지막 질문시간에 통일의 때를 묻는 한 학생의 질문에 `통일은 우리가 준비될 때 옵니다`라는 선문답 같은 답변을 한 적이 있다. 지금도 그렇게 될 것으로 믿는다. 통일의 준비는 통일세 신설일 수도 있고 또 다른 개성공단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북한이 가진 것을, 북한이 할 수 있는 것을 살려줄 때 통일의 그 날은 한발 더 가까이 올 것이다. 북한과의 협력은 차치하고 북한의 과학기술을 조사해 미래 가능성을 발견하는 남북협력 연구과제 마저 중단된 우리의 막힌 현실이 굶주린 북한 동포를 바라보는 마음만큼이나 가슴 아프게 다가오는 요즘이다.

최현규 KISTI 정보서비스실장 hkchoi@kisti.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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