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한의사협회가 지난 7월 발표한 ‘2008 전국 회원 실태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말 현재 국내 의사 면허 소지자 수는 9만9065명이다. 이 가운데 활동하는 의사 수는 7만8518명으로 나타났다. 의사 면허 소지자 10만명 시대가 온 것이다. 지난해 기준 우리나라 인구는 약 4854만명이다. 인구 약 485명당 의사 한 명꼴이라는 얘기다. 의료 복지의 확대라는 측면에서는 엄청난 발전을 이뤘는지 모르지만 의사 개인별로는 이제는 일부를 제외하고는 고소득 직업군이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지난달 국민건강보험공단이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전현희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경영난으로 운영비 부담이 늘어 아예 폐업하는 병의원이 2006년 1795개, 2007년 2015개, 2008년 2061개로 해마다 느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루 평균 진료건수가 10건 미만인 의원급 의료기관은 2006년 7.5%에서 지난해 8.3%로 증가했다. 하루 10명도 진료를 못 한다는 사실은 의료기관으로의 운영이 사실상 어렵다는 증거다. 이러다 보니 의사라는 직업 자체가 ‘대출의 보증수표’라는 말은 아득한 옛날 이야기가 됐다. 병원 폐업은 바로 의사 파산으로 이어진다. 포털에 들어가보면 의사 파산 전문 법무법인 광고가 즐비하다.
지난달 7일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회 국정감사장에서 자유선진당 소속 이상민 의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04년부터 2008년까지 5년간 국제 과학올림피아드 수상자 163명 중 국내 대학 진학자 118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의대 진학생은 39명으로 나타났다. 진학률로 보면 2004년 28%, 2006년 38.5%로 늘어났고 지난해에는 20명 중 10명이 진학해 50%에 달했다.
의사라는 직업이 예전과 같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이른바 머리 좋은 학생들이 의대로 몰리는 이유는 간단하다. 그래도 이공계 대학 졸업 후보다는 의사라는 안정된 직업이 메리트가 있기 때문이다. 일례로 일생을 연구실에서 보낸 출연연 연구원들은 61세 정년 후 극히 일부가 ‘고경력 과학기술자 활용사업’으로 재취업의 길이 열린다. 일부는 기업으로 가서 자문역을 맡는다. 모두 합해 정년퇴직자의 절반 안 되는 규모다. 반면에 의사는 정년이 없다. 요즘 61세는 노인 축에도 못 낀다. 얼마든지 일(진료)을 할 수 있는 나이다.
지난주 토요일, 고려대에서 연세대, 영남대 등 전국 12개 대학 이공계열 대학생 대표 60여명이 모여 등록금 차등 정책 폐지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가졌다. 1989년 대학등록금 자율화 조치 이후 이공계 등록금이 아무 근거 없이 지나치게 올랐다는 주장이다. 고려대는 이공계가 인문사회계열보다 연간 183만7100원이 비싸다고 한다. 이공계는 대학부터 차별받고 있는 셈이다.
선진국일수록 이공계를 우대하는 것은 잘 알려진 얘기다. 미국은 각종 인센티브를 제공하면서 전 세계에서 우수한 이공계 인재를 끌어모은다. 프랑스는 이공계 출신 초임이 인문계보다 평균 40% 이상 높다. 중국은 후진타오 국가주석이 칭화대 기계공학과 출신이며 부주석 시진핑도 같은 대학 공정화학과를 나왔다.
미래에 대한 희망을 주지 못하면서 우수한 학생들의 이공계 기피를 말하는 것은 앞뒤가 안 맞는 일이다. 이공계 미래에 확신만 심어준다면 의과대생들이 이공계로 몰리는 날이 오지 말라는 법도 없다.
홍승모 전자담당 smho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