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지갑에서 신용카드를 꺼내 영화를 본다.’
지금으로서는 상상하기도 힘든 이 같은 일이 수년 내 이뤄질 전망이다. 신용카드가 진화해 영화관 역할까지 하게 되는 것이다. 신용카드에 낸드플래시메모리·능동형 유기발광다이오드(AM OLED)·배터리가 내장돼 구현되는 것으로 이미 배터리 외에는 카드 국제 규격(0.68∼0.76㎜)으로 제작이 가능하다. 세계 최초의 멀티미디어 카드를 개발한 국민은행과 삼성SDI가 개발을 검토 중이다.
# IT와 함께 진화하는 신용카드
신용카드가 IT를 만나 진화하고 있다. 대표적 결제 수단으로 자리를 잡으면서 신용카드사들이 꾸준한 연구개발(R&D)을 펼친 결과다. 대표적으로 금융과 통신의 융합을 꼽을 수 있다. 휴대폰이 신용카드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신한카드는 3세대(G) 휴대폰에 삽입되는 범용가입자인증모듈(USIM)칩을 활용, 모바일 신용카드를 출시했다. 휴대폰 고객 정보가 담겨 있는 USIM칩에 신용카드 기능을 넣은 것. 모바일 신용카드는 ‘동글’ 등 USIM칩을 인식할 수 있는 IC 단말기에 접촉하면 결제할 수 있다. 특히 고객의 편리성을 높이기 위해 무선신용카드발급(OTA) 방식으로 쉽고 편하게 신용카드를 발급받을 수 있도록 했다.
신한카드는 현재 이동통신사인 KTF와 손잡고 이 사업의 확산을 모색하고 있다. 이재우 신한카드 사장은 “3G 이동통신사와 카드사의 제휴는 금융과 통신 간 컨버전스를 가속화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모바일 신용카드와 은행권에서 USIM칩을 활용해 펼치고 있는 모바일뱅킹의 한판 대결도 관심거리다. 현재 일부 시중은행이 도입한 것으로 시중에 깔려 있는 현금자동인출기(ATM) 등 자동화기기에 현금카드처럼 휴대폰을 접촉하고 예금조회·현금 입출·이체 등을 이용한다.
모바일 신용카드는 ‘동글’이 보급돼야 하는 과제가 있지만 모바일뱅킹은 인프라(ATM)가 깔려 있어 초기 모바일뱅킹보다 앞서 나갈 것이라는 전망이다.
세계 최초의 멀티미디어 카드인 ‘&D’도 한국 카드산업의 쾌거다. 국민은행과 삼성SDI가 공동으로 만든 것으로 카드에 낸드플래시메모리를 탑재해 동영상·MP4 등을 구현할 수 있다. 2Gb의 낸드플래시메모리를 내장한 것으로 이 메모리는 카드 두께를 벗어나지 않게 얇게 제작했다. 카드 메모리에 들어간 동영상은 별도의 플레이어로 구현된다.
# 디자인도 서비스도 진화한다
현대카드의 과감한 디자인 브랜드 전략도 한국 카드산업의 진화에서 빼놓을 수 없다. 알파벳카드·미니카드·투명카드 등 기존 카드업계에서는 전혀 볼 수 없는 ‘혁신적인 디자인’을 선보이고 있다. 현대카드는 한국 카드산업의 디자인이 한 단계 진화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현대카드는 브랜드 인지도 확산으로 슈퍼매치·슈퍼콘서트 등 ‘튀는 마케팅’으로도 유명하다.
기업은행 ‘알파카드’의 알파 서비스는 신용카드 서비스의 진화로 꼽을 수 있다. 교통·주유, 쇼핑·미용, 의료·교육, 금융, 복합형의 다섯 가지 유형이 있는 이 카드는 고객이 자신의 생활에 가장 필요한 유형을 선택한 후 전화로 서비스를 변경할 수 있다. 이 카드는 특히 IC칩을 이용해 전자통장을 30개까지 수록할 수 있고 카드를 갖다 대 결제하는 무선인식(RF) 카드 방식을 채택했다.
롯데카드는 금융과 유통의 결합을 펼친다. 롯데정보통신과 공동으로 롯데 IC카드 전용 단말기인 ‘통합 동글’을 개발, 롯데백화점·롯데마트 등 유통 매장에 설치해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것. ‘롯데로열티’로 명명한 이 서비스는 롯데 유통 기반 19개 계열사에 단말기 보급이 마무리되는 동시에 본격 시행된다. 고객의 속성 정보와 롯데그룹의 서비스·제휴·마케팅 정보를 바탕으로 결제 현장에서 맞춤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비씨카드와 인터넷 포털사이트 네이버의 ‘통합 계좌조회 서비스’도 주목된다. 비씨카드 회원들이 네이버에 로그인 후 공인인증서를 통해 본인 확인 후 은행·카드·증권 등 각 금융기관에 흩어져 있는 본인의 금융 계좌정보를 통합해 조회할 수 있도록 한 서비스다. 신용카드 외에 은행의 예금·적금·대출정보와 증권·펀드·CMA 등과 같은 금융상품 정보도 제공할 예정이다.
휴대폰에 금융 기능을 무선으로 내려받는 OTA 방식을 개발한 하렉스인포텍의 박경양 사장은 “신용카드가 IT·통신 기술의 힘으로 기존 마그네틱선(MS) 플라스틱 카드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다양한 모습으로 진화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 사기 수법도 진화 중
신용카드의 변화와 함께 사기 수법도 진화하고 있다. 금융기관을 사칭해 카드 사용 명세를 허위로 통보 후 개인정보를 요구하는 ‘보이스 피싱(voice phishing)’이 기승을 부리고 있는 가운데 최근에는 이보다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파밍(pharming)’도 부각되고 있다.
파밍은 인터넷 주소를 관할하는 시스템을 공격해 고객이 카드사의 인터넷 주소를 입력해도 범죄에 악용되는 가짜 홈페이지로 이동하도록 설계돼 있다. 여신금융협회 측은 이 같은 위험을 막기 위해 △휴대폰 단문메시지서비스(SMS) 신청 △보안 프로그램 설치 △스파이웨어 제거 프로그램 이용 등을 생활화할 것을 당부했다.
# 금감원, IC카드 보급…신용카드 진화 한몫
한국 신용카드산업의 진화에는 금융감독원이 한몫을 담당하고 있다. 금감원은 2003년 ‘전자금융 및 IT 부문 안정성 확보대책’을 통해 기존 MS카드의 IC카드 전환을 추진 중이다.
MS카드의 보안성이 취약해 추진된 것으로 2004년 10%, 2005년 25%, 2006년 45%, 2007년 70%, 2008년 100% 등 구체적 추진 일정까지 공개하고 전환 사업을 펼치고 있다. IC카드가 확산됐음에도 IC카드 이용 비중은 쉽게 늘지 않았다. ‘실과 바늘’처럼 함께 움직여야 할 IC카드 전용 단말기가 보급되지 않은 것이 문제다.
이는 단말기를 가맹점에서 설치하기 때문에 금융사를 관리·감독하는 금감원 측에서는 단말기 보급까지는 한계를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다행히 지난 8월 신용카드사와 단말기업계를 설득, 신규 가맹점에는 자발적으로 IC카드 단말기를 설치하도록 했다.
김인석 금감원 IT서비스팀장은 “IC카드 단말기가 설치되기 시작하면 고객들이 IC카드를 자연스럽게 사용하게 될 것”이라며 IC카드 수요 확산에 기대감을 나타냈다.
김준배기자 joon@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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