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전자신문이 중소기업청·벤처기업협회와 공동으로 개최한 `글로벌 벤처창업 콘퍼런스`는 스타트업·벤처인에게 많은 메시지를 남겼다. 존 라거링 구글 글로벌파트너십 이사는 스타트업 창업 멤버면서 현장에 몸 담은 임원으로서 스타트업 성공 요소를 실리콘밸리 현장에서 느낀 점을 토대로 솔직하게 전했다.
데이브 맥클루어 500스타트업 대표도 액셀러레이터 설립자와 엔젤 투자자로서 자신이 경험하고 느낀 스타트업의 글로벌 시장 진출 전략을 상세히 소개했다. 맥클루어 대표는 특히 해외시장에 진출해야 할 기업과 내수시장에 매진해야 할 곳을 나눠 발표했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벤처전문가 이민화 KAIST 교수와 엔젤형 벤처캐피털 시장을 이끌고 있는 임지훈 케이큐브벤처스 대표도 각 분야에서 느낀 점을 솔직하게 전했다. 이날 참석한 청중과 뜨거운 질의 응답을 벌이면서 콘퍼런스의 새로운 전형을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날 주제 강연과 패널 토론에서 7가지 스타트업이 명심할 키워드를 꼽았다.
◇스피드
스타트업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존 라거링 이사는 스타트업은 대기업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며 그 이유로 `스피드`를 꼽았다. 라거링 이사는 “과거 애드몹에 있을 때 대기업을 보면 굉장히 두려웠다”며 “하지만 그들이 민첩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토로했다. 스타트업이 경쟁력인 민첩성을 발휘하면 골리앗도 무너뜨릴 수 있다는 설명이다. 떠오른 아이디어를 제 때 실천하라는 주문이기도 하다. 라거링 이사는 “대기업 내부 시스템이 훌륭해 보이지만 이것이 아이디어를 실행하는데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면서 오늘 떠오른 아이디어를 바로 펼칠 것을 강조했다.
스타트업이 민첩성 발휘가 가능한 것은 `소수정예`이기 때문이다. 뜻이 맞는 사람이 집중해 하나의 결과물(기술·서비스)을 도출한다. 이는 실패해도 재기가 용이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해야 한다. 만약 아이디어 구현에 장시간이 소요된다면 상당한 비용 부담으로 이어진다. 하지만 시간이 짧으면 짧을수록 비용은 적게 든다. 사업이 실패해도 큰 부담 없이 과거 실패를 경험삼아 재도전할 수 있다.
◇인수합병(M&A)
패널토론 참가자들은 인수합병(M&A) 시장 부진이 우리나라 벤처·창업 생태계에 큰 걸림돌임을 지적했다. 대표적인 부정적인 여파가 엔젤투자 부진이다. 임지훈 케이큐브벤처스 대표는 “초기 투자의 가장 큰 문제는 미래 회수(Exit)가 힘들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M&A 시장만 충분히 존재한다면 맘껏 투자에 나서겠지만 그것이 없어 투자가 쉽지 않다는 설명이다.
벤처투자자는 자선 사업가가 아니다. 투자금을 언젠가는 회수해야 한다. 하지만 회수시장이 꽉 막혀있다면 투자를 꺼리는 것은 당연하다. 엔젤투자 참여자가 줄어드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이민화 KAIST 교수도 같은 의견이다. 이 교수는 “M&A를 위한 중간회수 시장을 육성하는 것이 엔젤투자 활성화의 해법”이라며 “시장만 제대로 구축되면 우리나라에도 세계 선두권의 스타트업체가 많이 나타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완벽한 벤처 생태계를 갖췄다는 미국 실리콘밸리를 보면 알 수 있다. 하루가 멀다 않고 M&A 소식이 들린다. 때론 들어보지도 못한 생소한 스타트업을 막대한 자금을 들여 인수했다는 소식이다. 예비 창업자, 엔젤투자자를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아이디어`보다는 `열정`
“최고의 벤처캐피털은 아이디어가 아닌 개인에 투자한다.” 라거링 이사 말이다. 이는 대부분의 스타트업 창업자 생각과 배치된다. 투자자의 관심을 끌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아이디어가 뛰어나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래서 튀는 아이디어를 찾기 위해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데이브 맥클루어 대표 생각은 반대다. 이유로는 `아이디어 변화`를 꼽았다. 많은 성공한 스타트업·벤처사업가 얘기를 들어보면 자신의 아이디어를 기술·사업으로 구현하는 과정에서 바뀐다. 국내 한 성공한 벤처사업가는 “창업 당시에는 6개월 만에 아이디어를 실현할 수 있다고 봤는데 처음에는 도저히 구현이 안 돼 포기했고 다시 시작해 완성하는데 3년이 소요됐다”고 말했다. 라거링 이사의 말과 일맥상통한다. 아이디어는 바뀐다. 오히려 아이디어에 너무 과다한 자신감을 보이면 투자자에게 실망을 안겨 줄 수 있다. 아이디어 구현 결과물이 나빴을 때 그 다음을 준비하지 못할 수 있기 때문이다.
라거링 이사는 “투자자는 창업가의 프레젠테이션(PT) 30초 만에 투자결정을 내린다”고 말했다. 투자자는 훌륭한 아이디어를 보고 투자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과 함께 일하면서 시너지 낼 수 있는 사람을 찾는다는 것이다.
◇모험
존 라거링 이사와 데이브 맥클루어 대표 모두 한국 VC의 고압적 자세를 문제로 꼽았다. 투자를 이유로 스타트업의 독립성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경우가 많다는 지적이다. 이들은 한국 VC가 도박을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맥클루어 대표는 “창업이 일종의 도박이자 모험이라면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것도 마찬가지”라며 “실패에 대한 위험을 감수하지 않고, 도박을 하지 않고 스타트업을 통제해 리스크를 줄이려는 한국 VC의 행태는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투자자가 기꺼이 리스크를 떠안는 도박을 해야 좋은 스타트업이 계속 생길 수 있다”며 “좋은 아이디어만 있으면 독립성 훼손 없이 자금을 유치할 수 있다는 믿음이 시장에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라거링 이사는 “투자자는 리스크를 감당하든가, 투자를 하지 않든가 둘 중에 하나”라며 “창업자만 도전하라고 할 게 아니라 VC도 도전이자 도박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내수 시장에서 성공
`스타트업이 어느 정도 내수시장에 집중해야 하느냐`는 `창업 초기부터 글로벌을 지향해야 하느냐`와 같은 말이다. 이에 대해선 패널토론에 참가한 연사 의견이 엇갈렸다. 이민화 교수와 존 라거링 이사는 앱스토어라는 새로운 플랫폼이 열린 만큼 적극적으로 글로벌 진출을 타진하라고 말했다. 이민화 교수는 “스타트업이든, 벤처든 결국 국내 기업은 내수시장이 작아 해외로 나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앱스토어란 글로벌 플랫폼이 등장하면서 스타트업 글로벌 진출이 쉬워진 것은 분명한 사실”이라며 “우수한 제품 개발보다 시장 개척이 훨씬 힘들다는 점을 명심하고 충분한 역량이 있다고 생각되면 적극적으로 나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반면 맥클루어 대표는 내수시장에서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두는 것이 먼저라고 말했다. 임지훈 케이큐브벤처스 대표는 비즈니스 특성에 따른 접근을 권했다. 그는 “내수시장 집중이냐, 글로벌 지향이냐는 결국 각 기업의 비즈니스 특성에 따라 달라진다”며 “글로벌 진출을 고려한다면 현지 문화·언어 이해도 높은 멤버를 팀 빌딩 초기에 확보해야 한다”고 말했다.
◇시장을 보는 시각
맥클루어 대표는 시장을 보는 새롭고 구체적인 방법론을 제시해 눈길을 끌었다. 단순히 현재 인구로만 시장을 판단해선 안 된다는 설명이다. 그가 제시한 시장 판단 요소는 크게 3가지. 인구와 인터넷 보급률, 온라인 결제비용이 그것이다.
인구는 현재 인구가 아닌 앞으로의 인구 성장률과 동일 언어권 분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맥클루어 대표는 “미국과 중국은 현재 인구는 많지만 향후 인구 성장 가능성은 적다”며 “스페인과 인도, 아랍 시장은 향후 인구 증가와 해당 언어 사용자가 늘어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인구 3000만명 이상 국가의 스타트업은 무조건 글로벌을 지향하는 것이 아니라 국내 특성을 파악해 내수시장에 집중하는 것도 좋다고 말했다.
맥클루어 대표는 “인구 5000만명의 한국 시장이 작다고 느껴질 수 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며 “인터넷·모바일 기반 기업에게 인터넷 보급률이 높고 온라인 콘텐츠에 기꺼이 비용을 지불하는 이용자가 많은 한국 시장은 충분히 매력적”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중국 시장이 크지만 글로벌 기업이 모두 모여 경쟁을 벌이고 있어 생존이 쉽지 않다”며 “상대적으로 경쟁이 덜하고 이제 막 스마트폰 시장이 열리고 있는 일본 시장으로 눈길을 돌릴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플랫폼
콘퍼런스 참가 연사는 플랫폼 변화를 선도하는 스타트업이 성공할 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 방법은 두 가지. 새로운 플랫폼을 만들거나 플랫폼 변화를 미리 예측하는 것. 존 라거링 이사는 “스타트업 장점은 위험을 감수하며 빠르게 움직이는 것”이라며 “유튜브란 새로운 동영상 플랫폼 역시 저작권 등 다양한 이슈를 해결하며 빠르고 과감한 도전에 나선 스타트업의 작품”이라고 말했다. 그는 “구글 등 대기업에 인수된 스타트업은 대개 새로운 플랫폼을 만들었다”고 덧붙였다. 이민화 교수는 “싸이를 글로벌스타로 만든 건 유튜브로 새로운 플랫폼에 최적화 된 콘텐츠를 만든 것이 성공 비결”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스마트폰 등장 이전에는 컴투스와 게임빌 등 휴대폰 게임제작 기업 규모가 작았지만 스마트폰 시대가 열리며 판도가 달라졌다”며 “새로운 플랫폼 등장을 예측하고 민첩하게 변화의 흐름에 올라 탄 덕분”이라고 말했다.
정진욱기자 jjwinwi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