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정보 누출사고로 온 나라가 떠들썩하다. 고객들의 고귀한 개인정보를 손쉽게 돈을 버는 수단으로 사용했거나, 제대로 지켜주지 못하는 불행한 풍경이 이어진 탓이다. 대형 인터넷경매사이트, 대규모 유무선통신사업자, 공공기관 등 개인정보를 관리하는 어느 곳도 예외가 아니었다. 1000만명 이상의 고객정보를 지켜주지 못한 대형 인터넷경매사이트와, 600만명이 넘는 고객정보를 제3자에게 빼돌려 각종 불법 텔레마케팅에 사용하도록 한 유선통신사업자는 법적제재를 피할 수 없을 전망이다. 각각 수만명으로부터 천문학적인 금액의 집단소송에 휘말려 있는 실정이다.
법원판결을 살펴보자. 복권 안내메일을 발송하면서 실수로 고객 명단을 파일로 첨부해 발송한 모 대형은행은 1인당 20만원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받았다. 채용사이트가 해킹당해 입사지원서를 노출시킨 한 대형전자업체는 1인당 70만원을 지급해야 한다. 개인정보 누출사고의 배상액은 점차 상향될 것이다.
개인정보 누출사고는 크게 세 가지로 구분된다. 첫 번째는 주로 국내나 중국에서 불법 해킹에 의해 대량으로 정보가 탈취, 유통되는 것이다. 두 번째는 합법적으로 수집한 개인정보를 당사자 동의 없이 사업상 이득을 위해서 제3자에게 넘기는 사례다. 마지막으로는 관리 소홀이나 부주의로 인터넷상에 노출시키는 것이다. 개인정보 누출은 2차 피해로 이어지면서 심각성을 더한다. 대표적인 피해가 보이스 피싱이다. 최근 1년간 신고된 피해만 무려 5700여건에 이른다. 피해를 금액으로 따지면 570여억원이라고 한다.
보이스 피싱은 범죄대상의 개인 및 신상정보를 정확히 알고 심리를 교묘히 이용하는 특징이 있다. 검찰·국세청·국정원 등 국가기관을 사칭해 상대에게 위압감을 주거나, 가족의 사고 및 납치 등 긴급성을 느낄 수 있는 상황을 허위로 만들어 돈을 보내게 하거나 금융거래정보 등을 탈취한다. 2006년 발생한 인터넷게임사이트 명의도용 사건은 조금 독특하다. 중국에서 유통되는 우리 주민번호를 도용해 회원으로 가입한 후, 돈이 되는 아이템과 캐릭터를 만드는 데 악용했다.
이 사건으로 인해 아직도 1만명 이상의 피해자가 소송 중이다. 개인정보 누출로 인한 피해를 일일이 열거하자면 끝이 없다. 극성스럽고 집요한 불법텔레마케팅을 위한 스팸전화, 신용카드 명의 도용, 불법 대포폰 개설, 부정 유료사이트 가입, 불법채권추심, 불법스팸메일 발송 등 수많은 2차피해가 지속·반복되면서 본인 입증을 위한 책임 부담과 금전적·심리적·정신적 피해가 지속되고 있는 형편이다.
대책마련을 위한 정부의 움직임은 사뭇 진지하다. 지난 5월 말, 개인정보보호 의무위반자의 제재를 대폭 강화하는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개인정보보호 의무위반행위로 얻은 부당이득 환수 신설 및 벌칙 강화, 누설된 개인정보를 제공 받은 자의 처벌 신설, 주민등록번호를 사용하지 않는 회원가입방법 의무화 등을 담고 있다. 최근의 대형 개인정보 유출사고는 사용자의 수준을 경제적인 측면에서 매우 향상시켰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개인정보는 곧 ‘돈’이라는 인식을 확산시켰다. ‘누출되면 배상받아야 한다’는 등식으로 연결되는 현상이다.
앞으로 개인정보를 다루는 사업자는 여느 때와는 다른 긴장을 요구받을 수밖에 없다.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한다. 법으로 정한 조치와 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으면 시쳇말로 망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고객의 개인정보 관리를 위한 실질적 투자와 철저한 윤리경영이 뒷받침돼야 한다. 정보보호를 위한 투자는 기업의 미래와 직결된다. 인터넷 사회의 책임보험이라는 점에서 반드시 필요하다.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 막는 일은 없어야 한다. 순간의 실수로 회사의 운명을 바꾸고 싶지 않다면, 정보보호에 대한 투자를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한국정보보호학회 회장 이홍섭 hslee568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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