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단상]글로벌 SW기업 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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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프트웨어(SW)가 산업이라는 옷을 입은 지 어느덧 20년이 흘렀다. 사람으로 따지자면 청년인 셈이다.

 내가 대학을 졸업하고 SW와 인연을 맺었을 당시에 비해 덩치도 엄청 커졌다. 시장규모는 20조 원을 넘어섰고 SW로 먹고사는 기업만 해도 6900여개에 이른다.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에 불과하지만 최근 5년간 연평균 성장률이 14%로 전체 산업평균성장률 5.6%보다 높은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문제는 이 같은 상승 무드에도 불구하고 SW기업 가운데 글로벌 기업이라고 이름표를 달 만한 기업이 아직 없다는 것이다. 국가별 100대 SI기업을 보더라도 SW 선진국인 미국은 말할 것도 없고 가까운 일본이 15개나 되지만 우리나라는 겨우 3개 기업이 진입해 있을 뿐이다. 한국 SW를 대표할 만한 글로벌 기업이 없는 이유는 국내 SW업계의 최대 약점인 영세성과 맞물려 있다.

 현재 국내 SW기업의 약 98%가 연매출 500억원 이하인 중소 SW업체다. 더군다나 대기업은 대기업대로 중소기업은 중소기업대로 그 나름의 전문성을 확보하지 못하고 좁은 내수 시장에서 제로섬 게임을 함으로써 규모의 경제나 기술축적은 상대적으로 뒷전으로 밀려 있다.

 이러한 문제를 극복하고 국내 SW기업이 글로벌기업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우선 국내 무대에서 성공 모델을 쌓아야 한다. 세계적인 IT기업도 한국 시장에서 성공모델을 만들어 성장할 만큼 국내 시장은 다양한 레퍼런스를 제공할 수 있는 IT환경을 가지고 있다. 한 예로 오늘날의 오라클이 전사적자원관리(ERP) 시장에서 순식간에 자리를 잡을 수 있었던 것도 포스코·LG전자·삼양사 등에서 쌓은 레퍼런스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 90년대 중반 당시 ERP 시장은 SAP가 장악하고 있었지만 국내 기업이 과감하게 오라클 제품을 선택함으로써 오라클은 커다란 레퍼런스를 바탕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레퍼런스가 중요한 또 다른 이유는 SW의 완성도를 높일 수 있는 계기가 된다는 점이다. SW의 기능과 품질은 절대적으로 사용자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공급자가 오랜 기간 개발했다 할지라도 사용자가 지속적으로 개선점을 요청하고 이를 바탕으로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 SW의 기본속성인 것이다. 이처럼 SW시장에서 레퍼런스 확보는 타산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기업의 성장에 큰 영향력을 발휘한다.

 그러나 글로벌 대기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지명도가 떨어지는 중소기업은 레퍼런스를 확보하기가 말처럼 쉽지가 않다. 품질과 기능이 확인되지 않았다고 해서 시장에서 외면하기 일쑤다. 이처럼 중소기업 제품이 시장에 진입할 기회를 계속해서 갖지 못한다면 중소기업의 제품은 영원히 기능과 품질 향상의 기회마저 봉쇄당하고 마는 것이다.

 이러한 악순환 고리를 끊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공공시장이 선도자 역할을 해야 한다. 공공시장은 국내 SW업체의 최대 수요처이자 최고의 레퍼런스 사이트다. 전체 SW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만 해도 20.8%로 부문별 규모로는 최대 시장이다. 그러므로 공공시장이 앞장서서 중소기업에 참여의 기회를 주고 이러한 과정을 통해 기능과 품질을 향상시킬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물론 지금까지 공공시장은 여러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중소기업을 위해 많은 역할을 잘해왔다.

 하지만 참여 기회를 잡지 못하고 방황하는 수많은 중소기업을 위해서라도 좀 더 많은 기회를 내주는 배려와 아량이 필요하다. 그것이 중소 SW기업의 경쟁력을 높여주는 길이자 국가 SW산업의 경쟁력을 획기적으로 도약시켜 주는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대기업 SI는 물론이고 공공기관, 나아가서 민간기업의 발주자 모두가 우리 SW산업의 경쟁력을 높인다는 사명감으로 중소기업들에 더욱 많은 참여의 기회를 제공하기를 기대한다.

◆유영민 한국소프트웨어진흥원장 ymyou@software.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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