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단의 순간들]채연석 前 항공우주연구원 원장(8.끝)

Photo Image
필자(앞줄 맨 오른쪽)가 2003년 8월 8일 우주센터 기공식 때 참석한 고건 전 총리(앞줄 오른쪽서 두번째)에게 우주센터의 기능을 설명하고 있다.

(8.끝)액체 로켓과 항공우주연구원장

 추력 13톤급의 액체 엔진을 국내에서 개발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로켓의 상세설계가 진행될수록 전체의 무게가 증가해 애초보다 큰 추력의 엔진이 필요했다. 몇 번 엔진 설계가 바뀌었고 2000년 4월 추력 1톤급 축소형 엔진의 지상시험에 성공했다. 그리고 6월 첫 번째 13톤급의 엔진을 만들어 러시아 로켓시험연구소로 보냈다.

 로켓엔진 개발에서 엔진 제작도 어렵지만 성능시험도 큰 문제였다. 국내에 시험시설을 건설하면서 한편으로 1992년에 방문한 적이 있는 러시아 로켓시험연구소에서 엔진 초기시험을 하기로 했다. 우리 액체엔진을 처음 본 러시아 기술자들은 점화도 되지 않을 것이라며 시험하는 것을 주저했다. 왜냐하면 러시아 액체 엔진과 구조가 달랐기 때문이었다.

 필자가 직접 시험연구소를 방문해 모든 책임을 지기로 하고 2000년 6월 23일 엔진에 불을 붙였다. 첫 점화시험에 성공했다. 그리고 그해 7월 말까지 연소시간을 8초까지 늘리며 순조롭게 진행됐다. 엔진뿐만 아니라 다른 부분 등의 개발도 팀장들을 중심으로 많은 어려움 끝에 조금씩 진행되고 있었지만 2002년까지 발사를 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었다.

  KSR-III 액체 과학 로켓 개발이 진행되면서 한편에서는 다음의 중요 과제인 인공위성 국내 발사용 우주로켓 KSLV-1 개발방식이 논의됐다. 필자는 국제적인 기술협력이 아주 제한적이고 힘든 우주로켓은 국내에서 독자적인 방식으로 개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일부산업체 및 외부 로켓전문가들은 해외에서 기술을 이전받아 개발하는 것이 성능 좋은 우주로켓을 빨리 개발할 수 있으며 발사실패를 줄일 수 있어 좋다고들 주장해 해외 기술협력을 받아 개발하는 쪽으로 결정됐다.

 필자는 2003년부터 2005년까지 우주로켓 KSLV-1 계약과 우주센터 착공 등 국내 로켓 개발사에 아주 중요한 시기이므로 로켓전문가가 연구원장이 되는 것이 연구원 발전에 도움이 될 것 같아 2002년 11월의 항공우주연구원장 선출에 참여했고, 우여곡절 끝에 많은 분들의 도움으로 6대 한국항공우주연구원장에 선임됐다.

 그리고 이를 축하라도 하듯 이틀 뒤인 11월 28일 국내 최초의 액체 추진제 로켓인 KSR-III는 성공적으로 발사돼 한국 로켓과학기술자의 뛰어난 능력을 전 세계에 보여줬다. 원장으로 재직한 3년 동안 우주개발의 필요성을 국민에게 직접 알리면서 많은 분들의 도움으로 우주개발예산을 두 배 이상 증액시켰다. 그리고 장차 국가 우주개발의 보금자리가 될 우주센터 기공식을 2003년 8월 8일 고흥 외나로도에서 고건 총리를 모시고 개최했고 많은 어려움 끝에 2004년 12월에는 러시아와 우주로켓 KSLV-1 공동 개발 계약을 마치는 등 국내에서 자력으로 인공위성을 발사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한 것이 큰 보람이었다.

 항공우주개발은 특히 개발 필요성에 대한 국민 공감대를 넓히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 앞으로 기회가 된다면 항공우주개발에 대한 국민 공감대를 넓혀가며 미래에 국가 우주개발을 책임질 훌륭한 후진을 양성하는 데 힘을 쏟으려고 한다. 그동안 많이 성원해 주시고 도와주신 여러분들께 감사드린다.

 yschae@kari.re.kr

브랜드 뉴스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