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쁠수록 돌아가라.’ ‘돌다리도 두들겨보고 건너라.’
최근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제조업체들의 사업다각화를 두고 여기저기서 우려의 목소리가 쏟아지고 있다. 시장 전망이 밝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너도나도 특정 아이템에 뛰어들면서 ‘블루오션’이 금세 ‘레드오션’으로 둔갑하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내비게이터와 휴대형 멀티미디어기기(PMP) 시장이 대표적이다. 디지털TV·MP3플레이어·셋톱박스 등 유수업체들이 앞다퉈 출사표를 던지면서 불과 2∼3개월 사이에 업체 수가 2배, 3배씩 급증하는 불안한 ‘쏠림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업계 관계자들마저도 “마치 과자 부스러기 하나를 놓고 새까맣게 몰려드는 개미떼 같다”며 자조한다.
제조업체들의 잇따른 활로 모색은 어쩌면 당연하다. 환율하락, 판가하락 등 잇따른 악재로 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마당에 기존 사업만 고수하는 것은 ‘시한부 인생’이나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문제는 너무 급하다는 것이다. 뭔가에 쫓기는 듯한 인상을 지울 수 없다. 당장 순손실이 불어나면서 주가가 폭락하고, 투자자들의 압력이 만만치 않기 때문일 것이다. 이왕 진출할 것 하루라도 빨리 진출해야 선점효과를 가질 수 있다는 욕심도 한몫하고 있다.
그러나 서두르는 만큼 시장조사와 판매전략은 ‘날림’으로 진행될 수밖에 없다. 업체들이 내놓는 신규사업 진출 배경이 시장조사기관들의 두루뭉술한 ‘장밋빛 시장전망’만으로 채워지는 것은 ‘참을 수 없는 고민의 가벼움’마저 느끼게 한다. 결국 초도물량조차 소진하지 못하고 신규사업을 접어야 하는 업체도 나타나고 있다. 제품 개발이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 예약판매에 돌입했다가 출시일을 맞추지 못해 회사 이미지가 추락하는 업체도 속출하고 있다. 혹 떼려다가 오히려 혹을 하나 더 붙이는 꼴이다.
한때 MP3플레이어 종주국임을 자랑하던 국내 기업은 2∼3년 늦게 시작한 후발주자 애플의 ‘아이팟’ 하나에 사상누각처럼 무너졌다. 해외보다 첨단 컨버전스 기술에서 앞서 가는 내비게이터·PMP도 똑같은 전철을 밟지 말라는 법은 없다. 잔뜩 움츠린 개구리가 더 멀리 뛰듯, 위기의 제조업체들이 ‘느림의 미학’을 한번 되새겨볼 때다.
장지영기자@전자신문, jyaj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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