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선인터넷망 개방 약속날인 7월 1일이 그냥 넘어갔다. 책임소재에 대해 외부포털(유선 인터넷 포털)사업자 측은 개방주체인 SK텔레콤이 정부가 정한 의무사항을 지키지 않고 있다며 조속한 개방을 촉구하고 있다. 반면 SK텔레콤 측은 망 개방에 필요한 이용자 표준약관 마련이 늦어지기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표준약관은 외부포털 사업자 간 합의에 따라 마련되는 것인만큼 SK텔레콤 측의 해명에 설득력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SK텔레콤 역시 협상과정에서 그동안의 폐쇄적인 망 운용으로 누려온 기득권을 지키고 싶어하는 것도 사실인 듯하다. 가령 망 개방시 외부사업자가 지급하는 수수료가 정보이용료의 40∼50%가 되는 체계를 요구한다든가, 외부사업자도 자사의 011고객관리 사이트(e스테이션)를 의무 경유해야 한다는 조건 등이 그것이다.
무선망 개방이란 이동통신3사의 이통통신망 기반 인터넷망을 외부포털사업자나 기간통신사업자들도 이용료만 내면 쓸 수 있도록 하는 정책적 결정 사안이다. 이동통신망은 서비스사업자(ISP)들이 자유롭게 접속할 수 있는 유선망과는 달리 3사가 고객과 시장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폐쇄적으로 운용해 왔다.
이 폐쇄성이 도마에 오른 건 무선인터넷이 차세대 산업으로 주목받기 시작한 3∼4년 전이다. 유무선 연동이나 데이터 융합이 필수적인 무선인터넷 시장에 대한 공정경쟁 환경이 정책적으로 필요해진 것이다. 정부가 그래서 신세기이동통신과의 합병 인가 조건으로 SK텔레콤 측에 무선망 개방 이행 의무를 부과한 게 2002년이고, 그 시행 시기가 우여곡절 끝에 결정된 게 올해 7월이다.
물론 SK텔레콤 측은 앞서 자사가 운영하는 전용포털(네이트)을 통해 외부포털들이 콘텐츠를 공급할 수 있는 부분 개방을 해왔다. 반면 외부포털들은 이용자들이 전용포털이 아닌 NHN이나 다음 등이 설정한 주소(URL)에 직접 접속할 수 있게 해줄 것을 요구해 왔다. 표준약관 작업이 늦어지는 것은 이 과정에서 양측의 이해가 합치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외부포털들은 011 망만 빌리겠다는 것이고 SK텔레콤은 망 임대 외에 여러 조건을 덧붙여 그동안 누려온 우월적 지위를 유지해 가겠다는 속셈인 것이다.
하지만 사안의 옳고 그름을 떠나 이번 망 개방 지연을 단순히 SK텔레콤 탓으로만 돌릴 수 있는가라는 반론도 적지 않다. 망운용사업자(NO)가 그 망을 이용한 서비스사업자(SP)가 될 수도 있는 우리나라의 통신산업 정책에 근본적인 원인이 있다는 것이다. 윈도 운용체계를 개발한 마이크로소프트가 우월적 지위에서 윈도에 최적화된 응용소프트웨어를 만들어 공급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SK텔레콤과 외부포털사업자 간 쟁점들이 타결된다 해도 결국은 단기적 합의 수준에 불과하리라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고 있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정책 당국이 무선망 개방과 같은 중차대한 논제를 고작 이동통신사 간 합병 인가조건으로 제시한 것은 정말 아쉬운 대목이다. 당국의 정책이 3∼4년 앞을 내다 보지 못한다는 얘기일 수도 있다.
때마침 공정거래위원회와 통신위원회가 거의 동시에 무선인터넷망 개방 일정 지연에 따른 조사에 나섰다. 조사 대상은 이동통신사와 외부포털을 포함한 콘텐츠제공업체(CP) 간 불공정 거래요소와 이에 따른 이용자 선택권 제한 여부 등이라고 한다. 반가운 일이다. 두 기관의 조사가 기대를 모으는 것은 행정적으로나마 무선인터넷에 대한 본질적인 가치를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나아가 이번 조사가 이동통신사업자와 외부사업자 간 유효 경쟁이 이뤄질 수 있는 정책적 재평가로 이어지기를 기대해 본다.
◆서현진 디지털문화부장 jsuh@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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