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희범
로버트 러플린 한국과학기술원(KAIST)총장이 14일로 취임 1주년을 맞는다.
작년 이맘 때 러플린 총장이 가족과 함께 KAIST에 입성하던 날, KAIST 학생들과 교직원 100여명이 행정동 본관에 나와 꽃다발을 선사하며 움츠려 있던 한국과학계의 등불이 되어 줄 것을 당부하던 모습이 떠오른다. 그동안 그는 KAIST 비전 수립 등 학내 업무 개혁 외에도 외국 초청강연 15회, 국내 초청특강 30여회, 언론접촉 60여회 등 그야말로 바쁜 나날을 보냈다.
하지만 총장 취임 1년째인 이 즈음, 노벨상 수상자인 러플린 총장의 역할과 평가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그는 단순한 KAIST 총장이 아닌 한국과학기술 대중화에 기여하기를 바라는 국민의 열망 속에 탄생한 연봉 50만달러의 첫 외국인 대학총장이다. 이런 점에서 취임 1년을 맞는 그의 역할에 대한 평가도 의미가 있다고 본다.
정부는 러플린 총장을 한국으로 데려만 왔지 무엇을, 어떻게, 어디에 활용할 것인지 아무런 대안도, 계획도 없었던 듯하다. 러플린 총장은 그 나름대로 KAIST 비전을 만들며 종합대 전환이니 뭐니 하며 6개월을 보냈다. 예산 집행권을 찾아오는 과정에서 교수 경영진과 1개월 이상 좌충우돌했다. 1개월 가량은 포항공대 아태이론물리센터 소장직 수행을 위해 파견됐다. 15회 가량의 외국 초청 강연으로 대략 두세 달은 해외에 있었다. 그렇게 1년이 지났다.
이 기간 러플린 총장은 단 한번도 우리의 꿈나무인 어린이를 상대로 강연하거나 가까이 가본 적이 없다. 어른들만의 잔치에 요인으로 초청받아 들러리 서는 게 전부였다.
요즘 KAIST 전산시스템의 운용체계를 윈도에서 유닉스로 바꾸자며 직원 교육에 열올리는 러플린 총장을 보면 속된 말로 ‘본전(?)’ 생각이 난다. KAIST의 위상은 올라갔을지 몰라도 한국과학기술의 위상 제고에 기여했는지는 알 수 없다는 생각 때문이다.
러플린 총장과 국민이 함께하는 전국적인 이벤트 하나 없는 현실도 아쉽다. “러플린 총장의 지난 1년이 과학기술계와 가까이하는 시기였다고 굳이 평가한다면 향후 1년은 과학기술 대중화에 나서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면 지나친 주문일까.경제과학부=박희범기자@전자신문, hbpa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