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기업]"PC가 바꾼 내인생"

때론 어떤 만남이 한 사람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는다. 윤종수(71) 변호사와 박헌국(48) 경희대 의용공학과 교수가 그렇다. 두 사람은 지난 82년 PC를 처음 만난후 인생이 180도 달라졌다.

대한변협의 컴퓨터연구위원장을 지낸 윤 변호사는 ‘법조 전산화’ 선구자로 통한다. 그는 판례 검색프로그램을 처음으로 만들어 판사, 변호사들에게 보급했다. 프로그래머가 아닌 법조인으로서. 뿐만 아니라 통합형 한글 탄생에도 결정적 기여를 했다.

직접 PC를 조립하기도 하는 그는 컴퓨터와 법을 접목하는데 지난 20년을 보냈다. 이 기간 동안 전직 장관을 비롯해 헌법재판관 등 500명의 법조인에게 컴퓨터를 가르쳐주기도 했다. 이런 공로 때문에 윤 변호사는 지난 4월 정부로부터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받았다.

그가 PC와 처음 인연을 맺은 건 아들 때문이다. 중학교 2학년(82년)이던 아들이 친구집에서 컴퓨터 게임을 한다고 늦게 귀가 하길래, 행여 탈선할 까 우려해 아들에게 PC를 사준 것이 계기가 됐다. 당시 처음 PC를 접한 윤 변호사는 ‘신선한 충격’에서 헤어나질 못했다. “진짜 신기했어요. 쇳덩어리로 만들어진 것 안에서 헬리콥터가 뜨고 총알이 날아다닌다는 것이...”

PC를 둘러싼 에피소드도 꽤 된다. 대표적인 것이 91년 일본 변호사협회를 방문 때다. 당시 윤 변호사와 비슷한 길을 걷던 한 일본 측 인사는 윤 변호사의 활동을 듣고는 “당신이 한수 위다”며 존경을 표했다. 그 유명한 6·29 선언도 PC 때문에 가능했다고 윤 변호사는 기억한다. 즉 6·29선언이 나오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 변협의 시국선언문은 워낙 수정 볼 문구가 많아 PC가 아닌 기존 기기(타이프)로는 불가능 했다는 것이다.

10년째 프로그램심의조정위원회(프심위)위원으로 있는 윤 변호사는 20명의 프심위 위원중 유일한 70대다. 하지만 그는 프심위 회의가 열리면 꼭 준비해간 유머 몇 개씩을 다른 위원들에게 선물(?)해주는 분위기 메이커다. “기술이 있으면 바로 큰 돈이 된다고 생각하는 프로그램 개발자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프로그램이 상용화 돼 돈이 되기까지는 상당히 어려운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기술이 돈이다’라는 생각을 앞세우면 돈이 눈을 어둡게 하여 인간을 못쓰게 하고 실패하게 됩니다.” 오랫동안 컴퓨터 관련 분쟁 소송을 담당해온 그가 IT업체에 주는 충고다.

윤 변호사가 법과 컴퓨터의 접목에 일생을 보내왔다면 박 교수는 의학과 컴퓨터를 융합하는데 일가견이 있다.

군 복무중이던 82년 박 교수는 “PC가 새로운 역사를 쓴다”는 외신 보도를 보고 “바로 이거다” 하며 무릎을 쳤다. PC가 의료분야에서도 새로운 역사를 만들 것을 직감했던 것.

컴퓨터와 의학의 환상적 만남을 꿈꾸던 박 교수는 국내에는 아직 이 분야 연구가 미약하다는 걸 알고 지난 85년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이후 근 20년간 미국에서 공부하다 지난 2003년 한국에 들어와 경희대 의과대학 의용공학과를 만들었다. 일반인에게 다소 낮설은 의용공학은 의학과 공학이 접목한 것으로 공학적 원리와 방법을 의학분야에 적용한 것이다. 공학과 의학을 동시에 전공한 의공학자는 우리나라에 많다.

하지만 그에 따르면 의사로서 의공학자는 박 교수가 국내 1호다. 박 교수는 미국 서버 업체인 선마이크로시스템스가 IT와 헬스케어를 연구하기 위해 만든 ‘선샤인’ 포럼의 7명 자문위원 중 유일한 아시아인이기도 하다.

미국 체류중 박 교수는 여러 의료 시스템을 개발하기도 했다. 환자 실시간 모니터링 시스템(97년)과 중환자실 모니터링 시스템(98년)이 대표적인데 현재 미국 병원에서 사용하고 있다. 나노 기술을 적용한 ‘생체모닝터링 시스템’을 현재 개발중인 박 교수는 “이 시스템이 개발되면 한개 한개의 신경세포도 측정가능해 진다”면서 “이렇게 되면 두뇌손상 정도를 파악하는데 정밀도가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높아진다”고 말했다.

가정에 있는 환자를 진료 할 수 있는 ‘원격 환자치료 시스템’ 도 박 교수가 관심을 두는 분야다.

박 교수는 아직 우리나라의 의공학 분야가 갈길이 멀다고 생각하고 있다. 가장 앞선 미국을 100으로 했을 때 우리나라는 70점에 불과하다고는 것이 그의 진단이다. 하지만 발전 가능성은 무한하다. 나무의 뿌리에 해당하는 의학과 공학 실력은 우리나라가 탄탄하다. “문제는 이 둘을 결합(융합)해 성과를 내는 것”이라고 강조한 박 교수는 “황우석 교수가 이름을 날리고 있는 것도 엔지니어링과 결합했기 때문”이라면서 의학과 공학의 만남을 역설했다.

방은주기자@전자신문, ejb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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