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해외 전략시장을 가다](7)중국(중)

13억 인구, 세계 최대의 시장이자 공장인 중국을 향한 각국 기업들의 러브콜이 뜨겁다. 세계 경제의 미래가 중국에 달린양 앞다퉈 현지 투자와 제휴의 손길을 뻗고 있는 것. 대륙에 몰아닥친 겨울 한파를 녹일 것 같은 기세다. 삼성, LG, 현대, SK 등 우리나라 대기업그룹 역시 동참했다. 이들 4대 기업이 92년 중국과 국교 수교 이후 집행한 누적투자 금액만도 44억달러. 차별화된 대(對) 중국전략으로 현지화에 성공, 세계적인 글로벌 기업으로 재도약하겠다는 각오다.

IT기업 해외진출 바람이 거세게 불던 99년 이후 국내 IT 중소·벤처기업들의 중국행도 러시를 이뤘다. 중국 비즈니스가 워낙 다양한 형태로 전개되기 때문에 정확한 숫자나 집계는 없지만 양국간 IT 분야 교역은 2000년 이후 2002년까지 3개년간 77.4%의 성장을 보였고 수출 증가폭도 105.5%에 달했다. 전체 교역규모에서 정보통신부문의 점유율도 2000년에 17.4%에서 2002년에는 23.4%로 빠르게 성장했다. 이동전화 단말기, LCD 등의 교역량 증가가 주된 원인이다. 지난해 6월 현재 양국간 교역은 72억5000만 달러의 규모를 이루고 있다.

하지만 중국에 진출한 IT기업중 성공한 기업은 얼마나 될까. 중국 현지에서 만난 대다수의 기업인들은 “양손에 꼽을 정도”라고 입을 모았다. 그만큼 극히 드물고 중도하차한 기업이 많다는 얘기다.

지난달 27일 기자가 방문한 아이파크 베이징 사무소의 14개 입주업체들도 같은 반응이었다. 정부가 중소·IT벤처기업의 중국 진출을 지원하기 위해 공동 입주시설 등을 마련했지만 현지화의 거센 벽을 넘고 성공하기란 하늘의 별따기였다는 평가다.

음성통합(CTI) 솔루션업체 넥서스커뮤니티 중국법인은 그나마 현지화에 성공해 3년째 입주해 있었다. 백은석 기술영업이사(36)는 “2000년 당시 IT버블 바람을 타고 너도나도 중국 현지 사무소를 냈지만 채 2년도 안돼 대부분이 철수하거나 전업했다”고 회고 했다. 이 때문에 입주업체들도 수없이 바뀌었다는 것. 이중 일부 업체들은 IT와 전혀 상관없는 유통 업체로 전업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백 이사는 “철저한 시장조사 없이 중국시장과 맞지 않는 아이템으로 승부를 걸었거나 중국인 현지 채용, 매뉴얼 중국어 변환 등 현지화에 대한 투자에 인색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또 기업규모가 작다보니 경영자들이 장기적인 비전보다는 빠른 투자회수를 요구하면서 제대로 된 결과물을 내오기가 어렵더라는 지적도 덧붙였다.

중국에 진출한 우리 기업들에게 가장 어려운 점을 들라고 하면 대다수가 ‘관시(關係·관계)’를 꼽는다. 제도보다 인간관계가 우선인 중국 비즈니스 관행을 말한다. 법적으로 정당해도 관시가 없으면 힘들고 아무리 어려워도 관시를 통해 쉽게 풀린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이 때문에 중국 진출한 우리 대기업들의 상당수는 핵심 요직에 현지인들을 배치한다. 중국 정부나 타 기업과의 관계 설정을 위해서는 불가피하다는 지적이다.

지난달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정보통신 전시회 PT/엑스포컴에 참가, 산업용 PDA 수출계약을 맺은 모바일컴피아 조성제사장은 “중국내 제휴선을 찾을 당시 상당수의 중국 파트너들이 ‘우리는 정부 고위인사와 좋은 관계를 맺고 있고 당신이 필요로 하는 것을 쉽게 해결해 줄 수 있다’는 말을 자주했다”고 전했다. 관시가 필요함을 공공연히 내세운다는 것. 확인도 되지 않는 이같은 제휴선들을 믿다가는 십중팔구 낭패를 본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러나 이제 관시의 힘은 예전에 비해 많이 약화되고 있다는 게 현지 관계자들의 지적이다. 주중 한국대사관 차양신 정보통신 참사관은 “중국 정부가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이후 법과 제도를 정비해 시스템에 의한 집행으로 새로운 질서를 구축해 나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데다 중국 정부가 최근 ‘부패와의 전쟁’을 선언하고 고위 간부들을 대거 뇌물죄를 적용해 파면하는 등 강력하게 제재하고 있다”고 말했다.

스스로 자정 노력을 집중하고 있다는 것. 실제로 중국 정부는 지난 7월 ‘중국 행정 허가법’을 공포해 495개 항목의 정부 인허가권을 폐지하고 ‘국무원 공작 규칙’을 제정해 투명한 행정처리 원칙을 세우기도 했다. 이같은 중국 정부의 노력은 현지 비즈니스 환경의 변화도 가져올 것이라는 기대를 낳고 있다.

결국 승패의 관건은 차별화와 현지화. 이를 달성하지 못하는 기업이 관시에만 매달려 정도를 벗어나가게 된다는 비판이다.

삼성전자 중국법인 이상국 부장은 “중국 현지 생산이 급증하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 기업이 중국 기업과 결코 ‘가격’으로 승부해서는 성공하기 어렵다”면서 “중국인들의 규범 문화에 맞게 인력을 관리하고 대만 제품 정도로 인식된 브랜드력을 끌어올리는 데 집중해야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베이징(중국)=정지연기자@전자신문, jyjung@

◇인터뷰-모영주 아이파크 베이징사무소장

“IT기업들의 중국 진출 지원사업이 이제서야 자리를 잡아가고 있습니다. 입주기업도 현지시장에 맞는 성공 가능성 있는 기업들로 선별하고 지원사업도 선택과 집중을 통해 시너지를 높일 예정입니다.”

베이징 아이파크 운영을 총괄하고 있는 모영주 소장은 IT업계의 중국 진출을 돕는 수호천사다. 과기부·정통부 소속으로 10년 가까이 중국에서 우리 기업들의 현지화 지원업무를 하다보니 진출한 기업들의 사정을 속속들이 알 정도다. 그럼에도 그는 여전히 “아직도 준비없이 중국에 진출하는 기업이 많고 성공하는 것도 여전히 어렵다”고 말한다.

시행착오 역시 많았다. IT붐이 정점에 달했던 2000년 6월 베이징 사무소가 개소해 지원사업을 시작했지만 시장상황에 맞지 않는 제품을 들고 온 기업들도 많았고 자금력이나 의지가 부족한 기업들은 스스로 중도에 손을 들고 나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 지원기관이다 보니 속수무책인 요구들도 감당해야했다.

“투자 대비 효율성(ROI)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지원해야할 기업은 많은 반면, 성공률은 낮았지요.”

우선 입주 및 지원단계를 차별화했다. 중국 현지 정보에 밝은 업계나 학계 인사들로 심사위원회를 꾸려 입주신청 기업들을 대상으로 사전 타당성 검토 등 컨설팅 작업을 벌였다. 중소기업들이 하기 어려운 현지 거래선 신용조사, 마케팅 정보 공유 등 집중지원 서비스를 다각화했다. 홍보를 위한 각종 현지 전시사업도 벌였다. 때문에 입주기업들의 주력 아이템들도 소프트웨어·PDA·게임·콘텐츠 등으로 다양화됐다.

모 소장은 중국 진출을 준비하는 기업들에 “좀 더 철저한 사전 준비와 각종 위험에 대한 대응력을 제고해야한다”고 조언한다. 아직도 정치·제도적 이슈 등으로 변화가 무쌍한 상황인 만큼 현지 비즈니스에 대한 순발력을 길러야한다는 것. 물론 아이파크가 그 역할중 일부를 맡아 지원하겠지만 전적으로 성패는 기업의 몫이라는 지적이다.

◇인터뷰-백은석 넥서스커뮤니티 중국법인 이사

“손털고 나간 기업들 수도 없이 많습니다. 준비도 부족했고 꼼수를 부리다가 낭패한 기업도 봤습니다. 무엇보다도 경영자들이 장기비전을 갖고 기다리지 못했습니다.”

CTI(음성통합) 솔루션업체 넥서스커뮤니티 중국법인 백은석 이사(36)는 지난 3년간 중국 생활을 통해 지켜본 한국기업들의 실상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IT붐에 힘입어 해외진출이라는 미명아래 너도나도 중국으로 달려왔지만 부지기수가 쪽박을 찼다는 얘기다. 심지어 어떤 기업들은 중국에 진출했다는 사실 하나로 주가만 신경쓰고 매뉴얼을 중국어로 변환하는 비용도 아까와하기도 했다고 한다.

백 이사는 요즘 조금씩 현지에서 성과를 거두고 있다. 중국에 진출한 우리나라 대기업들이나 다국적 기업들의 콜센터 구축을 수주하고 있는 것. 이미 선진국에서 보편화된 시스템인 만큼 현지 진출 외국기업들 공략이 적효했다. 차별화된 시장분석과 신뢰도 높은 SI업체 등 현지 거래선을 확보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즉시 대응이 가능한 기술인력을 비치해 고객들의 각종 AS를 해결하고 있다. 심지어 콜센터 구축에 필요한 현지 전화국과의 민원처리도 대행해주기도 한다.

“중국에서 성공하려면 상당한 준비와 인내가 요구됩니다. 또 분명 관시도 필요합니다. 현지인들의 사고방식과 업무 형태를 모르고 어떻게 성공할 수 있겠습니까. 가장 중요한 것은 해당 분야에서 어떻게 차별화하고 현지화해 신뢰도를 구축할 지가 가장 핵심입니다.”

<정지연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