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태명 한국스토리지텍 사장

 “본사 초대 회장부터 3대 회장까지 겪어봤으니 이 정도면 스토리지텍 역사와 함께 해온 게 아닐까요. 경쟁사의 흥망성쇄도 다 봤고, 또 앞으로의 시장 판도도 읽힙니다. 이제 한국스토리지텍의 2단계 도약은 후임자의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다국적IT기업 현직 지사장 중 최고령자. 21년간 한 제품만 취급해온 고집과 노하우.’ 한국스토리지텍 권태명 사장(58)에게 붙어 있는 이런 대명사 앞에 ‘지사 설립과 동시에 공개적으로 은퇴시기를 알린 사람’이라는 꼬리표를 하나 더 붙여야 한다. 내년 1년간 기술고문 자격으로 회사와 인연을 맺기로 했지만 꼬박 21년동안 맺어온 스토리지텍과의 공식적인 관계를 스스로 정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절대 밀려서가 아니다. 본사에서는 오히려 ‘정년이 없는 외국계 기업인데 왜 이런 선택을 하느냐’고 만류했다. 그러나 권 사장은 “지사를 설립하면서 3년 정도면 조직이 안정될 것으로 생각했고, 새로운 도약을 위해선 새로운 리더가 필요할 것이란 생각은 지금도 변함없다”고 말한다.

 지사를 설립한 것은 99년이지만 권 사장이 스토리지텍과 맺은 인연은 지난 81년부터다. 국제상사에서 장비 공급을 처음 맡으면서 시작된 인연은 85년 국제그룹 해체를 계기로 컴텍이란 회사를 만들어 스토리지텍 장비를 공급하게 됐고 지금의 지사를 이루게 됐다.

 한국스토리지텍은 출발 당시 120억원 정도 규모에서 390억원 수준으로 성장했다. “80년대만 해도 스토리지텍은 글로벌 기준 13위로 HP 바로 앞에 있었습니다. 또 저장장치 회사로는 유일한 위치였죠. 너무 기술 위주로 가다가 마케팅이나 영업에서 몇 가지 오류를 범했고, 그로 인해 스토리지텍이 갖고 있는 디스크관련 원천기술력이 가려지는 상황이 됐지만 조만간 그 빛이 다시 발할 것으로 확신합니다.”

 권 사장은 한국스토리지텍을 백업 분야의 전문기업으로만 알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면 서운하지만 디스크 시장에서 한국스토리지텍의 위상이 높아질 것이란 기대는 변함이 없다. “내년부터 글로벌서비스 체제를 갖추고 변신하는 한국스토리지텍을 주목해 달라”는 권 사장의 주문에는 21년간 한 우물을 판 뚝심이 보인다.

 권 사장은 현재 사회복지대학원 마지막 학기를 남겨두고 있다. 퇴직 이후를 명확히 준비하지는 않았지만 봉사활동을 생각한 지는 꽤 됐다. “현역 은퇴를 가장 서운해한 사람은 집사람입니다. 사업 초기 빅딜 3건을 성사시킬 수 있는 결정적인 아이디어를 제공할 정도로 회사에 애정이 많거든요.” 그러나 이번에도 부인 이기옥씨는 권 사장을 지지하고 나섰다. 이미 강원도 수해현장을 찾아가 자원봉사 활동을 하는 등 권 사장의 계획에 일찍부터 동참하고 있다.

 <글=신혜선기자 shinhs@etnews.co.kr

  사진=이상학기자 leesh@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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