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과학기술이 국제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연구지원도 중요하지만 여성인력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데 초점을 맞추는등 정책적인 배려가 우선돼야 합니다.” 국내 여성과학기술인들의 모임인 대한여성과학기술인회 이사를 맡고 있는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신기능정보소자팀의 정명애 박사(39).
그는 요즘 과제책임자인 정상돈 박사와 함께 진행한 ‘대박’에 가까운 연구결과 발표를 앞두고 눈코뜰 새 없이 바쁘게 움직이면서도 ‘여성과학기술인 육성과 지원에 관한 법률안’ 제정을 위해 최근 서울대에서 열린 공청회를 뒷바라지하는 등 발걸음이 분주한 만능 여성과학기술인 중 한사람이다.
과학기술자의 보편적인 특성인 순수하면서도 내성적인 성격을 지녔지만 남과는 달리 한다면 하는 다부진 결단력으로 눈길을 끄는 그는 연구와 대외활동 어느것 하나 뒤지는 것이 없는 과학기술계의 숨은 일꾼이다.
“ETRI의 경우 여성인력이 13%나 되는데다 점진적으로 증가하는 추세기 때문에 큰 문제가 없다고 보지만 아직까지 정부가 여성인력 할당제 시행을 위해 제시한 여성고용인력 20%에도 훨씬 못미치는 연구기관들이 즐비합니다.”
그는 또 연구과제에서 여성과학자 참여비율에 따라 평가를 달리해야 한다는 주장도 빼놓지 않았다.
그렇다고 과학자의 본분인 연구를 소홀히 하는 것은 아니다. 과학기술계의 여성 권익보호를 위해 앞장서면서도 최근 국내 저장 메커니즘을 획기적으로 바꿔놓기에 충분한 국내 최초의 신개념 고밀도 저장매체를 개발했다.
기존의 저장매체는 광굴절률을 읽어들일 때 고분자 변형 현상으로 데이터를 CD의 앞뒷면에 각각 2개층으로 쌓을 수밖에 없는 더블데스크지만 이번에 개발한 기술은 아직까지 상용화 수준으로 구현하지 못한 형광의 광을 이용해 데이터를 최소 10개층으로 쌓을 수 있다. 이 기술이 제품에 적용되면 DVD 저장용량이 현재보다 약 10배 정도 더 늘어날 것이라는 게 정 박사의 예측이다.
또한 이화여대와 공동으로 고분자 나노입자를 이용한 암치료용 약물전달체계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이 프로젝트가 완성되면 암치료에도 획기적인 전환점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는 이화여대에서 박사과정을 밟다 독일 크라우스탈공대로 유학을 떠나 고분자 물리화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 후 막스프랑크 고분자연구소에서 세계적인 재료공학계 석학인 크놀 교수와 연구활동을 하는 등 10년 동안 외국생활을 하다 우리나라의 과학기술계에 뭔가 족적을 남겨야 한다는 일념으로 ETRI에 정착한 것.
“연구환경으로 말하자면 우리나라가 선진국을 따라갈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지난 월드컵에서 보여줬던 국민들의 열정이 있고 과학기술계 또한 무엇이든 해낼 수 있는 저력이 있습니다.”
<대전=박희범기자 hbpark@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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