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덕균 한양대 공대 산업공학과 교수·북한산업지원교수단 대표 www.dieng.hanyang.ac.kr
남북 정상회담 이후 불과 서너달새 남북한 관계는 지난 반세기보다 훨씬 빠른 변화의 급류를 타고 있다.
이산가족상봉의 감격적인 휴먼드라마가 전세계로 방송되고 남북 군장성들이 만나 주거니 받거니 술잔을 돌리는 「영화」같은 사건이 현실로 나타났다. 북미관계개선,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남한방문 등 줄줄이 이어지는 이벤트속에서 일반국민들은 어지러움까지 느낄 정도다.
가슴 뭉클한 일련의 상황 이면에는 현 정부가 정치적 부담을 무릅쓰면서 지속적으로 시행해온 북한경제지원정책이 자리잡고 있다. 김대중 대통령은 보수세력의 견제에도 불구하고 적지 않은 규모의 식량과 자금을 휴전선 너머로 보내줌으로써 북한을 대화의 장으로 끌어내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지금 우리사회는 대북경제지원과 관련해 심각한 국론 분열을 겪고 있다.
악화된 국내 경제상황속에서 우리도 먹고 살기 힘든데, 언제까지 북한에 일방적으로 퍼줘야 하느냐는 불만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이처럼 통일비용과 관련한 경제적 불만이 남북통일 자체에 대한 회의론으로 연계될 가능성에 있다.
미국 골드만삭스는 남북한 통일비용이 노동생산성 격차, 통일시기 등에 따라 통일후 10년간 최소 7700억달러(약 855조원)에 달한다고 추정한 바 있다.
지금 부실은행 지원에 쏟아붓는 수십조원 규모의 공적자금 지출에도 비명을 지르는 유권자들에게 이보다 몇배 큰 경제적 부담이 10년여간 계속된다고 가정해 보자.
과연 어느 정권이 그 엄청난 부담을 떠안고 통일작업을 서두르겠는가.
배고픈 사람에게는 한 그릇의 밥이 중요하겠지만 그것은 임시변통이지 언제까지 남이 밥상을 차려줄 수는 없다.
이제는 우리나라의 대북경협이 퍼주기식 원조 대신 지식정보를 제공해 폐쇄된 북한경제의 생산성 문제를 해결하는 방향으로 바뀌어야 한다.
최근 조총련기관지인 조선신보는 북한의 곽병기 부총리가 삼성경제사절단을 맞는 자리에서 경제협력에 있어 남측의 사고전환을 촉구했다고 보도한 바 있다.
그는 『과학중시사상을 틀어쥐고 강성대국 건설을 추진하는 공화국이 원하는 것은 단순 임가공이 아니라 전자단지를 구성할 기술과 인재 육성』이라고 삼성관계자에게 당부했다고 한다.
이는 북한이 식량문제에서 다급한 불은 껐으며 자존심 강한 북한당국이 더이상 현물지원이나 값싼 노동력만을 희망하는 남한기업을 내심 반기지 않는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북한경제회생을 위해서는 낙후한 경제인프라 구축, 자동화설비투자 등 과제가 산적해 있지만 외환위기를 어렵사리 벗어난 남한경제가 직접 감내하기에는 너무 버거운 짐이다.
차라리 우리측 산업기술자·교수·금융전문가들이 보유한 전문지식이나 관리기술을 북한에 보급함으로써 북한 스스로 산업경쟁력을 개선하는 방안이 장기적인 남북관계 개선에 더 효과적이다.
우리가 지난 수십년간 축적해온 경제성장의 노하우를 북한경제를 이끄는 엘리트계층에 제대로 보급한다면 최소한의 비용부담으로 남북한경제의 생산성 격차를 줄일 뿐만 아니라 정치통합과정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북한 지도층도 그들의 경제성장에 필요한 전문지식을 배우는 입장에서 주민들에게 남한사회의 자유로운 활력과 장점을 계속 무시하라고 강조하기는 힘들다.
인류역사상 지식정보는 언제나 높은 곳에서 낮은 데로 흘러왔기 때문이다.
이제는 대북경제협력에서 쌀이나 현금 대신 「정보」라는 새로운 카드를 내밀 때라고 생각한다.
오피니언 많이 본 뉴스
-
1
[콘텐츠칼럼]게임 생태계의 겨우살이
-
2
[ET단상] 자동차산업의 SDV 전환과 경쟁력을 위한 지향점
-
3
[ESG칼럼] ESG경영, 변화를 멈출 수 없는 이유
-
4
[ET톡] '공공기관 2차 지방이전' 희망고문
-
5
[ET시론]정보화 우량 국가가 디지털 지체 국가, AI 장애 국가가 되고 있다
-
6
[人사이트]박세훈 근로복지공단 재활공학연구소장 “국산 고성능 의족, 국내외 보급 확대”
-
7
[김종면의 K브랜드 집중탐구] 〈29〉프로스펙스, 우리의 레이스는 끝나지 않았다
-
8
[디지털문서 인사이트] AX의 시대와 새로운 디지털문서&플랫폼 시대의 융합
-
9
[기고] '티핑포인트' 위기에 처한 대한민국 경제
-
10
[김태형의 혁신의기술] 〈21〉혁신의 기술 시대를 여는 서막(상)
브랜드 뉴스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