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어쩔 수 없는 「냄비 근성」

한국인의 부정적인 인성을 애기할 때마다 자주 도마위에 오르는 테마 중 하나가 바로 「냄비 근성」이다. 조그만 상황의 변화에도 이러저리 쉽게 마음을 움직이는 한국인의 그릇된 습성을 쉽게 달궈졌다가 쉽게 식어 버리는 냄비에 비유한 말이다.

최근 코스닥시장이 냉각되면서 벤처투자 시장에 이같은 한국인의 냄비 근성이 또 한번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불과 몇달전만 해도 상상을 초월하는 프레미엄을 얹어 경쟁적으로 벤처기업 발굴 및 투자에 나섰던 벤처캐피털들이 최근엔 언제 그랬냐는 듯이 「가격이 비싸다」 「수익모델이 없다」 「시장이 좁다」며 서서히 발을 빼고 있다.

융자나 주식·채권 등 유통시장의 증권투자에 주력했던 은행·투신·증권·보험·종금 등 금융기관도 얼만전까지만 해도 벤처투자팀을 만들어 벤처캐피털과 함께 벤처투자를 주도해 왔다. 올 초에는 수백억에서 수천억원을 벤처에 쏟아 붓겠다며 호들갑을 떨었다. 그러나 최근 코스닥시장이 불안해지자 이내 투자를 자제하고 관망세로 돌아섰다.

엔젤들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코스닥 활황기에 벤처투자로 거금을 버는 사례가 속출하자 많은 사람들이 기업의 비즈니스 내용도 모른 채 투자에 나서 「묻지마 투자」란 오명을 뒤집어 썼지만 최근엔 열기가 싸늘해지고 있다. 단 몇분이면 수십억원을 유치할 정도로 뜨거웠던 인터넷공모 역시 빠르게 냉각되고 있다.

정부도 냄비 근성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는 것 같다. 불과 1년 전만해도 「벤처만이 IMF 경제위기에 빠진 이 나라를 구해 낼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라며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는 파격적인 벤처 부양책을 내놓았던게 바로 이 정부다. 하지만 고작 1년도 채 안돼 벤처버블이 심각한 상황이라느니, 벤처과열 진정을 위해 연착륙이 필요하다며 벤처붐을 억누르려고 야단이다.

벤처산업을 둘러싼 이같은 총체적인 냄비 근성은 한창 무르익고 있는 국내 벤처산업의 도약에 적지 않은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데 문제가 있다. 기술과 아이디어만 믿고 거의 맨손으로 창업전선에 뛰어드는 벤처기업들에 벤처투자시장의 역할은 가히 절대적일 수 밖에 없다. 투자시장의 변화가 잦으면 잦을 수록 벤처기업의 비즈니스전략 수립이 어려워지고 그만큼 시장진입의 타이밍을 놓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중배기자 jblee@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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