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맨홀 (260)

TV뉴스는 이제 다른 화제로 바뀌어 있었다.

승민은 전화기의 송수화기를 들고 버튼을 눌렀다.

혜경의 전화번호였다.

고장수리중.

계속 고장수리중이라는 안내가 수화기를 통해 들려왔다. 승민은 송수화기를 놓고, 그리고 잠깐 망설였다.

끌 것인가 말 것인가.

그냥 두자. 승민은 컴퓨터를 그냥 켜두기로 마음먹었다. 방에 들어섰을 때 컴퓨터가 켜져 있는 것과 꺼져 있는 것에는 많은 차이가 있었다. 긴장이었다. 컴퓨터가 켜져 있을 경우에는 긴장감을 느낄 수 있었다.

글에 대한 부담을 가질 수 있었다. 하지만 컴퓨터가 꺼져 있을 때에는 그 긴장도는 많이 떨어졌다. 그냥 자버리기 일쑤였다. 방안으로 들어섰을 때 자신을 기다리는 듯 켜져 있는 컴퓨터 화면을 보면서 승민은 글에 대한 긴장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소설은 노동이었다. 수없이 반복적으로 읽고 써야 하는 노동. 컴퓨터 앞에서 잠이 드는 순간까지 글을 쓰다가 그냥 잠들어버리고, 그리고 일어나자마자 그대로 켜져 있는 컴퓨터를 보면서 작업을 계속해야 하는 소설 쓰기.

승민은 이제 소설이 노동처럼 느껴지는 것이었다.

몇 시간 맡아 하는 강의준비도 만만찮았고, 박사 코스의 학업도 만만치 않았다. 하지만 소설처럼 일거에 모든 것을 이룰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제대로 된 글 하나면 지금까지 꿈꾸어온 모든 것들을 한번에 이룰 수 있기 때문이었다. 승민과 소설은 그러한 형태로 만나 지속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혜경은 달랐다. 승민의 글쓰기에 가치를 부여하고, 그 가치에 확신을 주고 있었다. 혜경. 혜경을 만날 수 있었던 것도 소설 때문이었다.

혜경. 승민은 다시 혜경을 떠올리고 전화기를 바라보았다. 자신의 모든 것을 이해해줄 수 있는 여자. 자신의 뜻을 이루는 과정에서 늘 함께 해줄 수 있는 지순한 여인.

그랬다. 벌써 2년간의 만남이었지만 혜경은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그것은 승민도 마찬가지였다. 소설을 쓰는 과정과 살아가는 과정은 분명히 구분되어야 했다. 특히 자신의 아내에 관한 한은 그 어떤 여지도 없었다. 결코 용납될 수 없는 일이었다. 혜경은 거기에 합당했다.

혜경. 승민은 다시 한 번 송수화기를 들고 재다이얼 버튼을 눌렀다. 마찬가지였다. TV의 전원을 끄고, 윗도리를 걸치고 모자를 깊숙이 눌러썼다.

밖은 어두웠고, 싸늘한 바람이 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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