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영화검열 위헌결정에 부쳐

헌법재판소가 지난 4일 공연윤리위원회의 영화에 대한 사전심의 활동을 국가기관에 의한 검열행위라 보고 「위헌(違憲)」결정을 내렸다. 이로써 공륜의 사전심의를 받지 않은 영화상영에 대해서도 법적 규제의 길이 없어졌고 영화인들의 창작의욕을 짓밟고 있다고 비난받아온 영화의 가위질도 법적 근거를 상실했다. 이같은 헌법재판소의 결정으로 이미 폐지된 음반 심의에 이어 영화, 비디오 등 영상물의 사전심의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게 됐다.

사실 예술작품 심의란 자로 잴 수 있는 성격의 것이 아니다. 비록 심의기준이 있다 해도 주관이 작용할 수밖에 없다. 시대 분위기 역시 상당한 영향을 준다. 그동안 공륜의 제재로 말미암아 사회성 짙은 음악이나 영화가 빛을 보지 못했던 것이 이를 입증한다. 따라서 국가기관에 의한 이같은 예술작품 사전심의는 원칙적으로 없어져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4일 헌법재판소가 공륜의 사전심의제를 위헌이라고 결정내린 것은 당연한 결과로 받아들여진다.

이번 영화의 사전검열 폐지로 새로운 심의제도를 마련하기 위한 영화법의 손질이 시급해졌다. 물론 헌법재판소로부터 국가의 검열기관으로 판결이 난 공륜의 폐지도 불가피해졌다. 이에 따라 공륜을 대신할 민간 자율심의기구 구성에 대한 요구가 영화인들을 중심으로 강력히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현재 영화계는 헌법재판소의 위헌결정 이후 심의기구의 「무정부 상태」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혼란스럽다. 일부 영화들은 무삭제 상영을 선언하는 등 다소 혼란스런 양상도 보이고 있다. 또한 앞으로 빚어질 혼란과 부작용을 고려치 않은 이번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대한 비판도 따르고 있다.

이 결과 영화계에서는 영화법이 개정되기 이전까지 과도기적 혼란을 메우기 위해 심의를 공륜이 계속 맡는 것에 대해선 양해하는 분위기가 우세하다. 하지만 새로운 심의제도 아래에서도 계속 공륜이 심의 주체가 되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단언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앞으로 어떻게 하면 과도기적 혼란을 속히 수습하고 새로운 심의제도를 만들 것인가가 과제로 등장하고 있다. 내년 초쯤부터 실현될 새로운 등급심의를 공륜이 맡느냐 아니면 별개의 민간 자율기구가 맡느냐는 것이다.

이를 놓고 최근 문화체육부와 영화계 인사들, 특히 젊은 영화인의 의견은 엇갈리고 있다. 영화인들은 『이번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공륜과 같은 사실상의 국가기관이 심의를 맡는 것 자체를 문제삼은 것이므로 새 등급심의제도는 공륜이 아닌 민간 자율심의기구가 맡는 것이 당연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대해 문체부는 지난 7일의 대책발표에서 새 제도 마련 때까지 잠정적으로 공륜이 등급만을 심의토록 하는 방안을 내놓고 영화계의 협조를 구했다. 그럼에도 문체부는 공륜 폐지를 딱 부러지게 언급하지 않아 묘한 여운을 남겼다. 이것은 앞으로 뜨거운 논쟁을 예고하고 있다.

사실 아무런 심의 없이 국내 극장에서 무슨 영화를 상영해도 좋을 만큼 지금의 우리 사회가 충분히 튼튼하다고 영화계 스스로도 장담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그동안 공륜이 존재했던 것은 영화계의 자율수준이 그만큼 믿음직하지 못했다는 일면도 있다. 공륜의 가위질이 창작의 최대 걸림돌이라며 사전심의 철폐를 주장해 온 영화인 모두가 「청소년 보호」라는 책임과 의무를 다할 수 있는 자질과 양식을 갖추었다고 보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앞으로 문체부와 영화인들간의 이해가 타협점을 찾자면 적지 않은 논란과 시일이 소요될 게 확실하다. 현재 영화계는 「민간 자율심의기구의 구성」과 함께 「완전등급제 실시」 「성인전용관의 도입」 등을 해결책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에 대해 문체부는 영화심의 공백을 해소하기 위해 「공익감시위원회」라는 신설기구의 설립방안을 내놓았다.

그러나 이보다 중요한 것은 공륜의 사전심의 활동이 위헌이라고 판정난 이상 정부가 새로운 기구의 발족이나 구성 및 운영에 더 이상 영향력을 행사해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영상산업에 종사하는 관계자들의 책임 역시 이전보다 더욱 무거워졌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런 전제하에서 공통의 이해를 끌어낼 수 있는 지혜가 절실히 필요하다고 하겠다. 관련법규 마련 등에 대한 철저한 사전준비 없이는 이전보다 상황이 더 나빠질 수 있다는 점을 모두 인식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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