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부 통신대란 (10)
작은 키에 도수 높은 안경을 낀 전화수리공 차림의 사내 하나가 일동은행에서 그리 멀지 않은 맨홀 속에서 빠른 손놀림으로 케이블 접속작업을 하고있었다.
지상과 지하를 잇는 구멍, 맨홀.
쉑- 쉑- 소리를 내면서 뿜어져나오는 토치램프의 불꽃이 어둡고 음습한그 구멍 속을 현란스럽게 했다.
위험하고 위태로운 추락으로서의 공간. 함정과 절망의 공간. 은밀한 피신처.
빠져나오기 위해 몸부림치면서도 또 다른 구멍을 파헤치는 인간의 습성을비웃듯이 그 불꽃은 사내의 손놀림에 따라 춤을 추고 있었다.
들여다보는 사람도 없었다. 맨홀 속에는 그 사내 혼자였다.
능숙한 손놀림으로 케이블을 접속하던 사내는 이마의 땀을 닦으며 위를 올려다보았다. 하늘이 동그랗게 보였다. 동그란 하늘. 한쪽으로는 높은 건물이올려다보였다. 창연오피스텔이었다. 사내가 작업하고 있는 맨홀은 창연오피스텔 뒤 한적한 곳에 자리한, 그리 크지 않은 맨홀이었다.
사내는 한참 전부터 맨홀 속에서 작업을 계속하고 있는 중이었다. 굵지 않은, 건물 옥상에서부터 이어진 배수관 속으로 내려진 20가닥 정도의 심선이들어 있는 케이블을 분리하고 원래 케이블을 접속한 후 연관(鉛管)을 씌우고토치램프로 납을 녹여 연관을 붙이는 작업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주변의 케이블은 열수축관을 이용하여 접속되어 있었지만, 사내가 작업하는 케이블과몇 개의 케이블만이 연관으로 작업이 되어 있었다.
웨앵- 웨앵- 웨앵- 멀지 않은 곳에서 사이렌 소리가 들려왔다.
사이렌 소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사내는 벌어져 있는 연관을 오므리고토치램프로 달구어진 납을 능숙한 손놀림으로 연관에 녹여 붙이며 매끄럽게하고 있었다. 녹아나는 납이 은빛으로 반짝였다.
계속 울려대는 사이렌 소리. 이제 소방차는 아주 가까이까지 다가들고 있었다.
사내는 토치램프의 기름조절 레버를 왼쪽으로 돌렸다. 이제 푸른 빛으로바뀐 불꽃이 더욱 요란한 소리를 내며 뿜어져나왔다. 사내는 다시 한 번 흐르는 땀을 닦으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동그란 하늘. 창연오피스텔 맨 위층열려진 창문에 설치되어 있는 작은 안테나가 날카롭게 반짝였다.
쉑- 쉑- 푸른 빛으로 뿜어지는 토치램프 불꽃. 사내는 천천히, 그리고여유있게 작업을 계속했다. 녹아나는 납 한방울 흘리지 않는 능숙한 손놀림이었다.
사이렌 소리가 이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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