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물흐물해지는 시간의 세포와 함께 20세기의 일본인을, 군중들 속에서 발견하는 것이 놀랍지가 않다. 곤색 줄무늬 양복을 입고 안경을 낀 출퇴근 길의 샐러리맨들이다.
한 가지 틀림없는 것은 이들이 조상들보다 스트레스가 훨씬 많이 쌓인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오토바이를 탄 배달꾼이 국수사발을 가득 싣고 사람들 사이를 빠져나간다.
이 놀라운 광경에 얼이 빠져, 고비는 가마꾼들의 리듬에 몸을 싣는다. 유키의 가마가 조금 앞서가는 것이 보인다. 그러나 그는 그들을 뒤따라오는 가마는 알아차리지를 못한다.
가마꾼들은 조용한 골목길로 접어든다. 이 부근에는 맨션과 저택들이 가득하다. 골목길 끝에 다다르니 횃불을 든 사무라이 경비초소가 있다. 빨간 날개의 고바야시 투구가 눈에 익다.
무섭게 생긴 사무라이 두 명이 창을 들고 앞으로 나오더니, 가마를 세운다.
『이름을 말하고, 소속과 목적지를 밝히시오!』
첫번째 사무라이가 큰 소리로 외치며 창으로 가마꾼들의 얼굴을 가리킨다.
유키가 그 노래하는 듯한 목소리로 답하는 것이 들린다.
『타미야 상점 주인 카즈마 도노가(家)에서 왔습니다. 저는 그의 아낙이고뒤 가마에는 제 여식이 타고 있답니다.』
『상인의 아낙이라!』
모욕적인 말투로 사무라이가 답한다.
『그렇다면 물건 좀 봅시다. 얼굴을 내보이시오!』유키가 문을 연다. 유키의 아름다움에 두 사무라이는 조금 놀라는 눈치다.
다른 사무라이가 이제 고비의 가마로 다가와 문을 열려고 한다.
고비는 그가 다 오기도 전인데 그가 오는 것이 느껴진다. 그의 기는 유황의 검은 색과 연기나는 붉은 색이다. 사내의 조롱과 이를 가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고비는 고개를 숙이고 심연의 경지에 들어간다. 손가락을 낀 채 심호흡을하니, 그의 호흡과 의식이 연결된다. 세찬 기운이 그를 감싼다.
좌선을 하고 앉아, 다가올 일에 대한 예감에 발가락이 간지러워진다.
고비는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지, 일이 일어나기도 전에 정확하게 알아차린다.
망설이는 것이라고는 사무라이의 사고형태를 읽어내는 것밖에 없다.
남자가 틀림없이 시간에 대한 진짜 존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 이상하게느껴진다.
그는 먼 과거에서 온 개체가 아니다.
그는 17세기의 문화적·사회적·무술적 매너리즘인 자신의 현실 속에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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