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명대학교 연구진이 암세포의 성장과 증식을 돕는 단백질에서 특정 '신호'만 족집게처럼 골라 끄는 신개념 치료 기술을 개발했다. 정상 세포까지 공격하던 기존 항암제의 부작용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는 차세대 정밀 의학 플랫폼으로 주목받고 있다.
계명대학교는 권택규 의과대학 교수와 박광수 약학대학 교수 연구팀, 신동혁 연세대 생명과학부 교수 연구팀이 공동으로 원하는 단백질의 특정 인산화 신호만 선택적으로 제거하는 '바이오포스택(bioPhosTAC: 인산화 표적 키메라)' 기술을 개발했다고 8일 밝혔다.

단백질의 '인산화'는 세포의 성장과 사멸 등을 스위치처럼 조절하는 핵심 신호전달 기전이다. 지금까지는 이 스위치를 끄기 위해 인산화 효소 자체를 억제하는 약물(키나아제 억제제)을 주로 사용했다. 하지만 이 방식은 하나의 효소가 여러 단백질에 동시에 관여하는 특성 탓에, 표적이 아닌 다른 단백질의 정상적인 신호까지 차단해버리는 '오폭(부작용)'의 한계가 있었다.
연구팀은 효소 자체를 억제하는 융단폭격 대신, 특정 단백질의 신호만 끄는 '스나이퍼' 전략을 택했다. 인공지능(AI) 단백질 설계 기술을 활용해, 표적 단백질(OTUB1)과 인산기를 떼어내는 탈인산화 효소(SHP2)를 나란히 연결해 주는 이중기능성 물질 '바이오포스택'을 개발해 낸 것이다.
효과는 명확했다. 기존 억제제는 표적 단백질 외에도 주변의 다양한 단백질(JAK2, STAT3, ERK 등)의 인산화를 무분별하게 감소시켰다. 반면 바이오포스택은 다른 단백질에는 전혀 영향을 주지 않으면서 표적 단백질의 특정 위치(Y26)에 있는 인산화 신호만 정교하게 제거했다. 이를 통해 암세포 대사에 관여하는 신호를 성공적으로 억제했다.

나아가 연구팀은 이 기술에 '스마트 유도 기능'까지 탑재했다. 암세포 표면의 특정 항원(KKLC-1)을 추적하는 펩타이드를 도입해, 암세포에서만 선택적으로 약물이 작동하도록 설계했다. 동물실험 결과, 이 물질은 종양 조직에만 선택적으로 축적되어 우수한 암세포 사멸 및 종양 억제 효과를 나타냈다.
이번 성과는 최근 글로벌 제약업계의 화두인 '표적단백질분해(TPD)' 기술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 진일보한 결과물로 평가받는다. 단백질 전체를 아예 없애버리는 것이 아니라, 단백질의 본래 기능은 남겨둔 채 질병을 유발하는 특정 신호만 정밀 제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권택규 교수는 “기존 약물이 '어떤 인산화 효소를 억제할 것인가'에 초점을 맞췄다면, '바이오포스택'은 '어떤 단백질의 인산화 신호를 제거할 것인가'를 선택하는 새로운 접근법”이라며 “부작용을 줄이면서 치료 효과를 높일 수 있는 차세대 정밀 치료 전략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한편, 이번 연구 성과는 국제 저명 학술지 '어드벤스드 사이언스'에 게재됐다. 연구에는 계명대 서승언 박사와 우선민 박사, 연세대 최민형 학생이 공동 제1저자로 참여했다.
대구=정재훈 기자 jhoon@et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