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파칼럼] 보이지 않는 파동, 의료를 바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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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석훈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 책임연구원(한국전자파학회 전파의료연구회 위원장)

우리는 하루에도 수십번 전파를 사용한다. 스마트폰을 사용하고 와이파이에 접속하며, 블루투스 기기로 음악을 듣는다. 자동차 내비게이션의 GPS, 무선 결제 시스템까지 생각하면 전파는 이미 일상의 기반 인프라다.

그러나 이 보이지 않는 파동이 사람의 질병을 진단하고 치료하며 건강을 관리하는 데 활용되고 있다는 사실은 아직 충분히 알려지지 않았다. 의료 분야는 물론, 고주파 에너지를 활용한 피부 리프팅 장치나 마이크로파 기반 미용 시술 장비 등 미용 산업, 더 나아가 K뷰티 영역에서도 전파 기술은 핵심 요소로 자리 잡고 있다.

의료·바이오·미용 현장에서 전파는 조용히 그 역할을 넓혀가고 있다. 무선으로 구동되는 인체 삽입형 의료기기, 피부에 부착해 심전도·호흡·혈당 등을 연속 측정하는 웨어러블 센서, 특정 생체 조직에 선택적으로 에너지를 전달하는 전자기장 기반 치료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고주파 전자기장을 활용하는 MRI가 정밀 진단의 표준 의료 영상 장비로 자리 잡은 것처럼, 전파는 이제 생체와 직접 상호작용을 하는 기술적 수단으로 확장되고 있다.

특히 무선 전력 전송 기술은 체내 의료기기의 설계를 근본적으로 바꾸고 있다. 과거에는 배터리 교체를 위해 반복 수술이 필요했던 장치들이 외부에서 전달되는 전자기 에너지로 구동될 수 있게 되면서 환자의 부담이 줄어들고 있다. 비접촉 생체 모니터링 기술 역시 병원 방문 중심의 관리에서 벗어나 일상 공간에서 건강 상태를 지속적으로 추적하는 환경을 가능하게 하고 있다. 전파는 이제 단순히 데이터를 전달하는 통로를 넘어, 생체 상태를 읽고 그에 맞춰 자극을 조절하는 수단으로까지 확장되고 있다.

이 지점에서 한 가지 분명한 점이 있다. 통신 분야에서 전파는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 목적이지만, 의료 영역에서는 전자기장이 생체 조직과 직접 상호작용을 한다는 점에서 성격이 다르다. 전파의 세기와 사용 방식에 따라 생체 반응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의료에서는 더욱 정밀한 설계와 검증이 요구된다. 이는 전파를 회피해야 한다는 뜻이 아니라, 생체 반응을 이해하고 제어하는 기술이 함께 발전해야 한다는 의미다.

그런데도 국내에서는 통신 기술, 반도체 기술, 의료기기 기술이 각자의 영역에서 발전하고 있을 뿐, 이를 전파 기반 의료 응용이라는 전략 산업으로 체계화하려는 논의는 아직 본격화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배경에서 '전파의료'라는 개념을 보다 명확히 정립할 필요가 있다. 전파의료는 전자기장을 활용해 생체 정보를 감지하고, 이를 정밀하게 제어하며, 궁극적으로 치료와 관리에 적용하는 기술과 산업 전반을 포괄하는 영역이다. 이는 단일 의료기기의 문제가 아니라 통신·반도체·의료기기·인공지능(AI) 기술이 교차하는 융합 산업이다.

한국은 세계 최고 수준의 이동통신 인프라와 반도체 제조 역량을 갖추고 있다. 웨어러블 센서, 무선 임플란트, 전자기장 기반 치료 장치와 같은 핵심 요소 기술 역시 국내 연구 현장에서 활발히 개발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기술이 산업적 성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기반을 다지는 노력이 병행돼야 한다. 전파 기반 의료기기의 안전성과 유효성을 검증할 수 있는 전문 시험·평가 역량, 병원과 기업이 함께 참여하는 실증 연구 환경, 국제 표준과 인증 체계에 대한 능동적 대응이 그것이다.

고령화 사회에서 만성질환 관리 수요는 빠르게 늘어나고 있으며, 비침습·무선 기반 치료 기술은 의료의 공간과 방식을 바꾸고 있다. 전파의료는 더 이상 일부 연구자의 실험실에 머무는 개념이 아니다. 보이지 않는 파동을 얼마나 안전하고 정밀하게 활용할 수 있는지는 곧 산업 경쟁력으로 이어진다. 통신 강국이라는 기반 위에 전파의료라는 전략 영역을 체계적으로 육성한다면, 우리는 보이지 않는 파동으로 의료를 바꾸는 시대를 스스로 열어갈 수 있다.

오석훈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 책임연구원 sukhoonoh@kbsi.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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