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생성형 인공지능(AI)으로 게임 아이디어를 실제 결과물로 구현하는 속도가 빨라지면서 개발자의 '안목'이 핵심 경쟁력으로 떠오르고 있다. AI가 수많은 선택지를 빠르게 만들어낼 수 있는 시대일수록 무엇을 선택하고 발전시킬지를 결정하는 개발자의 취향과 판단력이 중요해진다는 진단이다.
김용하 넥슨게임즈(225570) IO본부장은 14일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 '부산인디커넥트페스티벌(BIC) 2026' 부대행사 '2026 부산 인디 웨이브 컨퍼런스' 키노트에서 '게임은 어떻게 세계가 되는가'를 주제로 게임 팬덤과 지식재산권(IP), 생성형 AI 시대 게임 개발자의 역할에 대해 발표했다.
김 본부장은 최근 게임 시장의 변화를 '국민게임에서 저마다의 게임으로'라고 설명했다. 과거 '스타크래프트'와 '리그 오브 레전드'처럼 대다수 이용자가 함께 즐기는 게임이 시장을 이끌었다면, 최근에는 이용자 취향에 따라 특정 게임을 깊게 즐기는 다양한 팬덤이 공존한다는 것이다.
블루 아카이브가 지난 6월 진행한 첫 오프라인 러닝 행사 '키보토스 런 2026'에는 이용자 4500명이 참가해 5㎞를 함께 달렸다. '포켓몬스터' 행사에는 가족 단위 이용자가, '러브앤딥스페이스'에는 여성 팬이 두드러지는 등 게임에 따라 팬덤 구성과 IP를 소비하는 방식도 세분화되고 있다.
김 본부장은 “국민게임이 사라진 건 아니다. 그 옆에 각자가 깊게 좋아하는 게임이 많아진 것”이라며 “팬들은 모이고, 찾아가고, 직접 만든다”고 말했다.
게임이 단순한 콘텐츠를 넘어 이용자에게 하나의 '세계'로 기억되기 위해서는 플레이 경험을 중심으로 IP를 설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본부장은 게임을 IP로 기억하게 하는 요소를 '반복한 행동·기억나는 상징·관계'라는 세 가지 축으로 정리했다. '포켓몬스터'의 포획·배틀과 몬스터볼, 트레이너와 포켓몬의 관계가 대표적이다. 'PUBG: 배틀그라운드'에서는 낙하·생존과 Lv.3 헬멧, 스쿼드·경쟁이 이에 해당한다.
그는 이를 '세계관의 라이프스타일'이라는 개념으로 확장했다. 설정과 이야기를 쌓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이용자가 게임 세계에서 어떤 역할을 맡고, 무엇을 반복하며, 캐릭터와 어떤 관계를 형성할 것인지까지 설계해야 한다는 의미다.
자신이 개발을 이끈 '블루 아카이브'도 사례로 들었다. 이용자에게 학생을 지도하는 '선생님'이라는 역할을 부여하고 전투에서는 태블릿 형태 UI를 통해 학생에게 지시한다. 전투 밖에서는 메신저 형태 '모모톡'으로 학생과 대화한다. 이용자의 역할과 행동, 캐릭터와의 관계를 하나의 경험으로 연결한 것이다.
생성형 AI 확산은 이 같은 게임 제작 방식에도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한 문장을 이미지로 만들고 이미지를 영상으로 발전시키는 것은 물론, 아이디어를 플레이 가능한 게임으로 만드는 시간도 크게 줄었다.
넥슨게임즈 IO본부 또한 지난 5월 생성형 AI를 활용한 게임잼을 진행했다. 1~3명으로 구성된 51개 팀이 참가해 이틀 만에 실제 플레이할 수 있는 게임 48개를 완성했다. 김 본부장은 이를 AI가 개발자를 대신했다는 의미로 해석하는 데는 선을 그었다. 오히려 개발자가 아이디어를 빠르게 구현하고 여러 결과물을 비교할 수 있게 되면서 '선택'의 중요성이 커졌다는 설명이다.
그는 “AI는 후보를 빨리 보여준다. 무엇을 남기고 어디서 멈출지는 사람이 고른다”고 말했다.
게임을 만드는 진입장벽이 낮아지는 만큼 이용자에게 선택받기는 더욱 어려워진다. SteamDB 기준 지난해 스팀에는 1만9112개 게임이 출시됐지만 9327개는 이용자 리뷰가 10개에도 미치지 못했다. 리뷰가 하나도 없는 게임도 2229개에 달했다.
김 본부장은 이런 환경에서 개발자의 '취향(Taste)'을 경쟁력으로 꼽았다. AI는 기존 패턴을 빠르게 학습하고 여러 결과물을 생성할 수 있지만 어떤 결과물이 더 좋은지, 어떤 게임을 만들고 싶은지를 결정하는 것은 결국 개발자라는 것이다.
단순한 취향을 '안목'으로 발전시키는 방법으로는 '만들기→비교하기→이유 말하기→다시 고르기'를 제안했다. 여러 결과물을 실제로 만들어 나란히 비교하고 하나를 선택한 이유를 설명하는 과정을 반복하면 개발자 고유의 판단 기준을 만들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 같은 안목을 바탕으로 아직 충분히 시도되지 않은 '미개척지'를 찾는 것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사례로 '림버스 컴퍼니', '명일방주: 엔드필드'와 함께 넥슨게임즈가 개발 중인 'Project RX'를 들었다.
김 본부장은 'Project RX'를 '이세계 홈스테이'에 가까운 게임이라고 소개했다. IO본부 산하 RX스튜디오가 PC·콘솔·모바일을 대상으로 개발하고 있으며 이용자가 매력적인 캐릭터와 함께 살아가는 이세계를 구현하는 것이 목표다. 언리얼 엔진5 기반 3D 그래픽과 캐릭터 생활 콘텐츠, 스토리텔링 등을 준비하고 있다.
김 본부장은 “취향은 처음부터 고급일 필요가 없다”며 “만들고 비교하고, 왜 하나를 골랐는지 말하는 선택이 쌓이면 본인만의 게임이 된다”고 말했다.
부산=박정은 기자 jepark@et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