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이 디지털 통상 이슈를 쟁점화하면서 우리 정부도 일괄 대응이 아닌 사안별·단계별 전략 마련이 필요하다는 제언이 나왔다. 디지털 규제가 통상 협상의 직접적인 압박 수단으로 활용되는 등 새로운 무역 갈등의 중심으로 떠오르면서다.
한국무역협회(KITA) 국제무역통상연구원은 3일 '미국발 디지털 통상 쟁점 국가별 비교 및 시사점' 보고서를 발표하고, 미국이 관세·투자 협상 과정에서 디지털 통상 이슈를 핵심 의제로 다루고 있다고 분석했다.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디지털 서비스 규제, 데이터 이전, 플랫폼 정책 등이 새로운 무역장벽으로 부상했다는 설명이다.
미국은 최근 유럽연합(EU)·캐나다 등과의 협상에서 디지털 분야를 주요 협상 카드로 활용했다. EU는 망사용료 도입을 추진하지 않기로 하고 전자적 전송물에 대한 무관세 원칙을 유지하기로 했다. 캐나다는 디지털서비스세 도입 방침을 철회했다. 미국이 디지털 규제를 '차별적 조치'로 규정하며 통상 압박을 가한 결과라는 평가가 나온다.
우리나라 역시 예외는 아니다. 미국은 한미 공동 팩트시트와 국별 무역장벽보고서(NTE)를 통해 망사용료, 온라인 플랫폼 규제, 데이터 현지화 문제 등을 주요 디지털 무역장벽으로 지적해왔다.
보고서는 미국이 문제 삼는 디지털 통상 이슈를 국가별로 비교·분석한 뒤, 대응 전략을 달리해야 할 세 가지 유형으로 분류했다. △해외 유사 쟁점 △잠재적 주의 쟁점 △한국 특수 쟁점이다.
해외 유사 쟁점은 우리나라와 주요국이 공통적으로 도입하거나 논의 중인 규제다. 디지털 시장 경쟁 정책과 디지털 서비스 안전 규제, 데이터 현지화 문제가 포함된다. EU의 디지털시장법(DMA)과 디지털서비스법(DSA), 우리의 온라인플랫폼법과 정보통신망법 등이 대표적이다. 보고서는 국제 규범과의 정합성을 확보하고, 규범 차이가 불가피할 경우 제도의 특수성을 설명할 수 있는 논리 구축이 필요하다고 봤다.
향후 문제가 될 소지가 있는 잠재적 주의 쟁점으로는 디지털서비스세와 인공지능(AI) 규제가 지목됐다. 특히 EU AI법을 둘러싸고 미국이 차별적 규제 가능성을 문제 삼고 있는 만큼, 우리도 AI 기본법 시행과 관련 입법 과정에서 해외 사례를 면밀히 분석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한국 특수 쟁점으로는 망사용료와 위치기반 데이터, 정밀지도 등 데이터의 국외 반출 문제가 꼽혔다. 한국에서만 강하게 제기되는 규제인데, 미국과의 통상 협의에서 반복적으로 언급되고 있다. 보고서는 이미 한미 무역·투자 합의에서 해당 이슈를 논의하기로 한 만큼, 디지털 주권 확보라는 정책 목표와 통상 마찰 최소화 사이에서 정교한 균형점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아울러 디지털 통상 이슈를 단순한 통상 마찰 요인이 아니라 기회 요인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디지털 통상 협정 체결 확대, 기존 자유무역협정(FTA)의 디지털 챕터 고도화 등을 통해 한국 기업의 글로벌 디지털 시장 진출 기반을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전윤식 KITA 수석연구원은 “국내 산업과 소비자 보호를 전제로 하되, 디지털 경쟁력 제고와 통상 리스크 관리라는 중장기적 실익을 함께 고려한 전략적 대응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안영국 기자 ang@et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