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관세정책이 본격화하면서 증시를 넘어 실물 경제까지 영향이 번지고 있다. 자동차, 철강, 알루미늄은 물론 반도체, 의약품까지도 품목별 관세가 추가로 부과될 가능성이 더욱 커지면서 관세 전쟁이 장기화 국면에 들어설 전망이다. 중국의 보복 관세와 이에 따른 미국의 재보복, 여타 국가의 대응 조치 등으로 살얼음판을 걷는 장세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한국은행은 7일 유상대 부총재 주재로 주요 집행간부와 국실장이 참석하는 '비상대응TF'를 열고 미국 상호관세 발표 이후 국내외 금융·외환시장 상황을 점검했다. 참석자들은 지난주 강도 높은 미국 상호관세 발표 및 이에 따른 글로벌 무역분쟁 심화 우려 등으로 주가·환율 등 국내 주요 가격변수의 변동성이 크게 확대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유 부총재는 “향후 미 관세정책을 둘러싼 불확실성이 높고 예상보다 장기화될 가능성도 있는 만큼 24시간 점검체제를 통해 금융·외환시장 상황을 면밀히 모니터링하고 필요시 가용한 시장안정화 조치를 즉각 시행해야 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한은이 시장 안정화 조치를 거론한 것은 이번 관세발 무역전쟁이 미국 뿐만 아니라 세계 전반의 경기 침체로 번질 수 있다고 판단해서다. 실제 미국이 주요국에 관세를 부과한 뒤 중국이 보복관세에 나서면서 주요 투자은행들은 미국의 경기 침체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JP모간은 침체 확률을 40%에서 60%로 상향했고 골드만삭스, 스탠다드앤푸어스, 무디스 등도 침체확률을 20%에서 35%까지 상향했다.
관세 전쟁이 장기화할 수록 국내 실물 경제에 미치는 영향도 더욱 확대될 전망이다. 이날 SK하이닉스는 한국거래소에서 직전 거래일 대비 7.79% 하락한 16만8000원으로 거래를 시작해 9.55% 하락한 16만4800원으로 장을 마감했다. 이날 코스피 지수 종가(2328.20)의 하락 폭(5.57%)에 비해서도 큰 폭으로 하락했다.
이미 관세전쟁이 불거진 상황에서 국내 주요 산업인 반도체 품목에도 추가 관세를 부과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면서다. 실제 모간스탠리, 골드만삭스, 메릴린치 등 주요 외국계 증권사들은 SK하이닉스 매도 창구 상위권이 이름을 올리며 대거 주식을 매도하고 있다.
이미 관세가 발효된 자동차 품목은 연일 하향세다. 현대차와 기아는 관세가 본격 발효되기 이전인 지난 2일부터 4거래일 연속 주가가 빠지고 있다. 이날 역시 외국계 증권사를 중심으로 대거 매도세가 쏟아지고 있다. 현대차는 6.62%, 기아는 5.69% 하락해 거래를 마쳤다. 국내 증시 전반이 하락하는 와중에서도 시가총액 상위 수출 기업의 주가는 더욱 가파른 하향세를 보이고 있다.
금융당국에서도 이번 관세 전쟁이 단순히 금융시장의 충격으로 그치지 않을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김병환 금융위원장은 이날 금융상황 점검회의를 열어 금융지주회장과 정책금융기관 등에게 “기업 등 실물 부문에 대한 자금 지원에 보다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면서 현장에서 금융권이 자금공급이 원활히 지원할 것을 당부했다.
향후 증시 반등도 불투명하다. 오는 9일에는 국가별 상호관세 조치가 발효될 전망이다. 중국이 지난주 발표한 미국산 수입품에 대한 추가 관세도 10일이면 발효된다. 유럽연합(EU)도 7일(현지시간) 예정된 집행위원회 회의에서 미국에 대한 보복 관세를 발표할 예정이다. 세계 각국의 보복 관세에 따른 여파가 국내 증시에 불어닥칠 가능성이 크다.

류근일 기자 ryuryu@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