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험시장에 활기를 불어 넣을 것으로 기대받았던 디지털 보험이 사장될 위기에 이르렀다. 낮은 수익성과 지속된 적자로 건전성까지 흔들리면서 '디지털' 타이틀을 포기하는 회사도 나타나는 실정이다.
13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한화손해보험은 자회사 캐롯손해보험 흡수합병을 검토하고 있다. 꾸준한 자본확충이 요구되는 보험업 특성상 재무건전성 해결을 위한 방안으로 합병을 고려하고 있다는 것이 회사 측 설명이다.
카카오페이손해보험은 최근 카카오페이로부터 유상증자를 검토하고 있다. 아직까지 디지털 보험사들은 적자를 지속하고 있음에도 건전성비율 유지를 위해 비용이 투입돼야 하는 구조다.
◆ 모회사 수혈에도 건전성비율 턱걸이
특히 지난해부터는 디지털 보험사 건전성비율(지급여력·K-ICS비율)이 크게 악화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급여력비율은 보험사 보험금 지급능력을 나타내는 건전성 지표다. 현재 금융당국은 150% 이상을 유지할 것을 권고하고 있는데, 대부분 보험사 건전성비율이 악화하면서 올 상반기 중 권고치를 130%까지 하향할 예정이다.
작년말 기준 교보라이프플래닛 건전성비율은 152.27%로 전년 동기(121.55%) 대비 30% 가량 상승했다. 이는 지난해 4월 모회사 교보생명으로부터 1250억원 유상증자를 받은 덕이다. 같은 기간 하나손해보험은 154.89%를 기록해 1.81%p 개선된 것으로 나타났다. 마찬가지로 작년 7월 하나금융지주로부터 1000억원을 수혈 받았다.
신한EZ손해보험은 작년말 기준 지급여력비율 159.16%를 기록해 전년 동기(469.41%) 대비 300%p 가까이 건전성이 악화됐다. 이에 신한금융지주는 올해 3월 1000억원 규모 유상증자를 결정한 상태다. 카카오페이손해보험의 경우 사업확장과 함께 건전성비율이 4777.18%에서 409.63%까지 축소됐다.
캐롯손해보험은 281.26%에서 156.24%까지 건전성비율이 급격히 악화되면서 모회사에 흡수합병되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사실상 카카오페이손보를 제외한 디지털 보험사 모두가 모회사 지원으로 간신히 건전성을 유지하고 있는 셈이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건전성 제도 강화와 시장금리 인하, 회사별 사업 확장이 맞물리면서 자본건전성이 악화되고 있다”며 “적자 구조로 발행시장 내 신용등급이 낮을 것으로 예상되면서, 이자비용이 소요되는 채권보다 유상증자로 건전성을 관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 제한된 사업구조와 낮은 수익성에 '백기'
적자 행진까지 지속되면서 디지털 타이틀을 포기하는 보험사들도 등장하고 있다. 작년 기준 디지털 보험사 당기순이익은 △교보라플 -256억원 △하나손보 -280억원 △신한EZ -174억원 △캐롯손보 -662억원 △카카오손보 -482억원으로 모두가 순손실을 기록했다.
통신판매전문 보험사로 출범한 캐롯손보, 카카오페이손보와 달리, 하나손보와 신한EZ손보는 종합손해보험사지만 디지털 보험사를 표방해 왔다. 보험업법상 통신판매전문 보험사는 주력 판매채널을 온라인으로 운영해야 한다. 소비자로부터 거둬들이는 수입보험료 90% 이상을 전화, 온라인 등 비대면으로 모집하는 구조다.
반면 작년말 기준 하나손해보험이 대면모집을 통해 거둬들인 수입보험료는 전체 수입보험료(3132억원)중 23.7%를 기록했다. 같은 기간 신한EZ손보 대면모집(581억원) 비중은 98.4%다. 디지털 보험사로 불리기 민망한 수준이다.
업계는 우리나라 자생력이 부족한 디지털 보험 현실이 드러나고 있다고 평가한다. 보험시장은 전통적으로 설계사를 통한 대면 영업이 강세다. 계약 기간이 10년 이상으로 길고 복잡한 보험상품 특성상 소비자가 온라인에서 약관을 이해하는 것보다, 설계사 설명을 듣고 가입하는 것이 편리하기 때문이다.
온라인 채널 한계와 함께 미니보험 위주 포트폴리오도 수익성 악화 요인으로 꼽힌다. 소비자에 상품을 설명하기 어렵다 보니, 디지털 보험사들은 비교적 구조가 간단한 여행자보험, 휴대폰보험 등 수익성이 낮은 미니보험(소액단기보험)을 위주로 상품을 판매하고 있다.
한 보험사 관계자는 “하나손보는 GA, 신한EZ손보는 신한라이프 교차설계사 쪽을 공략해 대면영업을 강화하고 있다”며 “비대면 영업만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박진혁 기자 spark@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