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기술리더 7인 인터뷰
병역특례·장학금 지원 키우고 AI에 초점 맞춘 커리큘럼 필요
정부 지원 GPU로 LLM 개발, 스타트업까지 낙수효과 기대
개인정보 활용 규제 너무 엄격, 기초연구 참여 문턱 낮출 필요

글로벌 인공지능(AI) 시장은 미국과 중국을 중심으로 거대언어모델(LLM)과 생성형 AI, 산업별 특화 모델 등으로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은 인재 유출, 인프라 부족, 데이터 제약이라는 3중고에 직면해 있다. 대형 모델 중심의 논의나 단기 성과 중심 정책은 AI 산업의 본질적 경쟁력을 저해하는 요인이다.
본지는 국내 주요 AI 기술 리더 7인과의 인터뷰를 통해 한국 AI 산업의 현주소와 나아갈 방향을 짚었다. 전문가들은 공동적으로 AI 인재, 인프라, 데이터를 AI 경쟁력의 핵심 축으로 꼽았다. 이 세 가지 축에 있어 국가 차원의 전략은 물론 기업 단위의 기술 투자와 방향성 설정이 더욱 중요한 시기라는데에 입을 모았다. 대한민국의 AI 경쟁력을 냉철히 돌아보고, 산업 전반에 걸친 혁신의 실마리를 찾아야 할 시점이다.
◇AI 인재 확보 핵심은 교육과 생태계
전문가들은 AI산업을 지속적으로 이끌어가기 위한 가장 큰 경쟁력으로 사람을 꼽았다. 아무리 고성능 컴퓨팅 자원을 갖춰도 이를 다룰 수 있는 인력이 없다면 무용지물이라는 설명이다. 인력 양성을 위해선 교육자 및 커리큘럼의 중요성이 꼽혔다.
황리건 원티드랩 CTO는 “AI 기술이 워낙 빠르게 변하고, 실무자 또한 현업에 집중해야 해 여력이 없을 수 있다”며 “기업이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경력자와 신입에게 AI와 관련한 최신의 기술을 전수할 수 있게끔 지원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준영 야놀자 CTO는 “각 기업의 목적에 맞도록 AI를 모델링하고 활용을 정말 잘 할 수 있는 AI 전문가를 양성할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이 필요하다”고 짚었다.
커리큘럼 자체가 AI에 조금 더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황 CTO는 “소프트웨어 개발 학과의 경우 일반적인 웹 개발에서부터 앱 개발 서버 개발 등을 다 배운다”며 “지금처럼 빠르게 AI 기술을 따라잡아야 하는 상황에서는 AI에만 포커스가 맞춰진 커리큘럼이 필요해 보인다”고 강조했다.
현재 전 세계에서 AI 엔지니어 쟁탈전이 벌어지고 있는 가운데, 한국의 AI 인재 유출을 막기 위한 생태계를 형성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동일한 업무에 대해 미국에서는 3~5배의 보상이 가능한 가운데, 유인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것이 중론으로 꼽혔다.
황민영 셀렉트스타 부대표는 “한국 인력은 영어 능력과 성실성, 기술 역량을 모두 갖추고 있기 때문에 글로벌 기업들에게는 최고의 타깃”이라며 “국내에 이들이 머물 수 있도록, 연구 자율성 보장, 고연봉 정책, 연구 장비 지원, 실리콘밸리와 연계된 글로벌 협업 프로그램 등 실질적인 유인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하정우 네이버클라우드 AI 이노베이션 센터장은 “AI를 전략산업기술로 지정해 이에 맞는 세제지원, 규제완화, 병역특례 제도 등 다양한 지원을 제공하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산학협력 활성화에 대한 중요성도 부각됐다. 장선 중고나라 기술연구소장은 “산학 협력에 적극 참여하는 기업들에게 세제혜택을 제공하고 AI 분야를 연구하는 학생 및 연구원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하는 등의 정책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GPU 가격은 장애 요소…정부 적극 투자 필요
AI 모델의 고도화를 위해 필수적인 건 GPU 인프라다. 딥시크 쇼크는 '적은 GPU 자원으로도 AI 개발이 가능하다'는 인식을 심어줬으나 기존 GPT를 능가하는 서비스를 만들지는 못했다는 것이 업계의 중론이다. 이에 전문가들은 AI 컴퓨팅 인프라에 대한 투자가 적극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CTO는 “인력이 있더라도, 엄청난 컴퓨팅 비용(GPU)으로 인해 제대로 독자적으로 연구 및 개발하는 데 한계가 있다”며 “국내 몇 군데 대기업을 제외하고는 수백개의 GPU는 고사하고 단 몇 개의 GPU조차도 부담이 된다”고 밝혔다.
황 부대표는 신기술, 특히 모델을 개발하는 스타트업에게 정부의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고 짚었다. 그는 “캐나다의 경우 정부가 'Cohere'라는 한 기업에게 수천억원 단위의 GPU 자원을 지원해 준다”며 “한국도 AI 핵심 기업에게 전략적 GPU 자원 할당 및 클라우드 크레딧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부의 지원을 통해 LLM을 만드는 대기업뿐만 아니라 스타트업도 낙수효과를 누릴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하 센터장은 “20만장의 GPU로 만들어낸 Grok3의 사례로 볼 때, 여전히 '규모의 법칙'이 작동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며 “대규모의 GPU를 검증된 AI 기술 기업이 도전적 기술을 만드는 데 활용할 수 있다면, 오픈소스로 공개된 이들의 LLM을 활용해 스타트업 또한 혁신적인 비즈니스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GPU 지원에 있어서 투자 영향력과 장기적 관점의 투자 집행을 고려해야 한다는 의견도 대두됐다.
황 CTO는 “VC나 스타트업 육성 기관이 트렌드를 잘 아니, GPU 지원을 할 때 실제 사업 계획이나 성과로 이어질 수 있는지 면밀히 살펴보는 것이 필요하다”며 “피투자사가 향후 어떤 수익 모델을 만들지, 왜 지원이 필요한지 등의 관점에서 지분 투자의 형식으로 투자가 집행되면 좋겠다”고 짚었다.
◇데이터, 수집도 활용도 쉽지 않다
데이터 확보는 AI 개발의 기초로 꼽힌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데이터 자체가 부족하거나, 있어도 규제로 인해 활용하기가 어렵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김정길 사람인 AI랩실장은 “현재 우리나라는 데이터 활용과 관련해 조금은 빡빡한 규제가 있다”며 “규제할 것은 당연히 규제해야 하지만 관습에 의한 데이터 통제는 분명 풀어야 할 숙제”라고 지적했다.
최 CTO는 “우리나라는 개인정보 보호에 대한 기조가 약하진 않는 편이라 개발단에서는 데이터 처리과정에서 개인정보로 식별될 수 있는 정보를 제거하거나 난독화하는 작업이 요구된다”며 “핵심 서비스를 개발하는 것 외의 업무를 부차적으로 해야 하다보니 다른 나라보다 개발 제약이 클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전문가는 공공데이터 개방 및 구축에 대한 필요성에 대해 의견을 함께했다. 데이터 문턱을 낮추는 작업이 필요하다는 것이 골자다. 시장별 체계적 데이터 수집 및 제공이 중요하다는 점 또한 강조됐다.
김 AI랩실장은 “직무별 특화된 LLM 모델을 만들기 위해서는 국가직무능력표준(NCS)를 넘어서는 현실적인 직무, 스킬, 직업, 자격, 교육 데이터가 중요하다”며 “실사용자들이 피부로 느낄 수 있는 현실적인 데이터들이 정리돼 제공된다면, HR 업계 내 AI 활용 속도는 획기적으로 빨라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장 소장은 “중고거래에서는 사용자들이 제품 데이터를 자세히 기입하지 않거나, 잘못된 데이터를 제공하는 경우가 잦아 AI 모델이 정확하게 학습·추론하기가 어렵다”며 “제품 정보에 대한 공공데이터가 제공된다면 정확도 향상과 추론 성능 향상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데이터를 축적하기 위한 기준 마련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최 CTO는 “뷰티·미용은 심미적 관점에서 다뤄지다 보니, 정형화된 데이터가 없다”며 “화장품의 경우 사용 후 개선 효과를 측정하기 위한 기준이 마련돼 있는 만큼 성형과 피부 시술에 있어서도 기준이 마련된다면 데이터 축적 및 활용이 용이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AI 경쟁력엔 전략이 필요하다
미국은 올해 AI 연구개발(R&D) 비용에 각 33억1600만 달러(약 4조8000억원), 중국은 과학기술분야에 총 550억 달러(약 80조4000억원)을 투자할 계획을 발표했다. 이에 비해 한국의 AI R&D 비용은 1조2000억원 수준에 불과하다. 전문가들은 예산 차이를 극복하기 위한 전략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먼저 실용적인 접근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왔다. AI 모델 개발에만 매몰되지 말고, 이용자 수요가 있는 킬러 서비스를 만들어내야 한다는 주장이다.
황 CTO는 “한국에서는 제한된 혹은 부족한 환경에서도 사람들의 창의력이나 노력으로 극복해낸 사례들이 다수 있었다”며 “AI 모델을 만들기 위해 많은 리소스와 자원이 필요하니, 기존 모델을 활용해 이용자가 필요로 하는 서비스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짚었다.
AI 구심점을 마련해야 한다는 필요성 또한 대두됐다.
김 AI랩실장은 “기초 연구개발에 민간 기업도 참여할 수 있는 방식의 도입이 필요하다”며 “다양한 아이디어를 가진 중소, 중견 기업들이 실험할 수 있는 장이 마련된다면 생각하지 못한 곳에서 딥시크와 같은 혁신적인 사례가 나타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최 CTO는 “인재, 인프라, 데이터를 조화롭게 가져가기 위해 하나의 AI 컨소시엄을 구성해 오너십을 가지고 끌고 가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고 밝혔다.
AI 서비스 검토가 개발과 함께 진행돼야 한다는 '워킹 백워드'의 중요성도 부상했다. 이를 통해 기업은 서비스를 출시하지 못하거나 서비스가 지연되는 불상사를 방지할 수 있고, 정부는 가이드라인을 다듬을 수 있을 것이라 내다봤다.
최 CTO는 “기업이 AI를 개발할 때 기획서가 있을텐데, 이를 국가 심의기관에서 사전 심의 등록을 할 수 있도록 한다면 개발 후 검토 시간을 단축할 수 있을 것”이라며 “관습적으로 맨 꼴찌에 두는 검토 및 심의 과정을 앞당긴다면 정부 또한 가이드라인의 사각지대를 파악, 리스크를 예방하는 규범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손지혜 기자 jh@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