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톡]애플의 불장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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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의 신규 공급망이 화제다. 중국 반도체 기업 양쯔메모리테크놀로지(YMTC)로부터 3차원(3D) 낸드플래시를 구매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애플의 공식 발표는 없었다. 그러나 미국 상·하원 의원들이 “애플이 불장난을 하고 있다”고 할 정도면 진전이 있어 보인다. 중국 반도체 굴기 견제에 안간힘을 쓰고 있는 미국 정부로서는 애플의 행보가 '뒤통수 치기'로 읽힐 법하다.

애플이 중국 반도체 기업을 공급망에 편입하려는 건 비즈니스 차원에서는 당연하다. 중국 내에 아이폰 판매망을 늘릴 수 있고, 싼값에 메모리를 들여와 다른 공급사와의 가격 협상력을 높일 수 있다.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를 견제할 수도 있다. 이 때문에 애플과 YMTC 간 밀월 소식은 우리나라 대표 반도체 기업에 악재로 읽혔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애플의 의도와는 다른 차원에서 YMTC가 글로벌 빅테크로 꼽히는 애플 공급망에 진입하려는 건 우리에게 큰 위협이다. 깐깐하기로 유명한 애플과의 거래는 YMTC 기술 역량이 어느 정도 궤도에 올랐음을 방증한다. 세계 최고의 낸드 기술력과 양산 능력을 갖춘 삼성전자 및 SK하이닉스의 뒤를 바짝 쫓아왔다는 의미다. 애플이 중국 내수 시장에만 YMTC 탑재 제품을 푼다 하더라도 중국 반도체 경쟁력이 이미 글로벌 수준으로 통용된다는 건 부정하기 어렵다.

YMTC는 지난해 128단 낸드 양산을 발표했다. 이때만 하더라도 시장에서는 YMTC 기술뿐만 아니라 양산 여부마저도 의심했다. 애플의 아이폰 탑재가 현실화하면 중국 메모리 반도체 기술은 시장에서 '공식적'으로 인정 받을 수밖에 없다. YMTC는 낸드 기술력을 가늠하는 비트 밀도 경쟁에서 쟁쟁한 세계 기업과 견줘서 뒤지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SK하이닉스와 마이크론이 200단 이상 수준으로 치열하게 적층 경쟁을 전개하고 있지만 시장에서의 대세는 여전히 128단이다. 중국이 가격 경쟁력까지 앞세운다면 시장에서 비중이 높은 128단부터 잠식할 공산이 크다.

성숙 기술부터 시장을 공략, 규모의 경제로 경쟁사를 압도하는 건 전통적인 중국의 전략이다. 우리나라가 세계 최고를 자부하던 액정표시장치(LCD) 시장을 그렇게 잃었다. 최근에는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디스플레이 시장도 위협받고 있다. 수십년 동안 왕좌를 지켜 온 메모리 시장에서도 중국의 공세를 피할 수 없다면 우리나라 반도체, 나아가 산업 근간이 흔들릴 수 있다.

필요한 건 '초격차'다. 반도체 업계가 몇 년째 반복해 온 단어다. 중국 반도체 굴기가 시작되기 전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이제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 등 특정 기업만으로는 초격차 실현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각국이 반도체 경쟁 우위를 확보하려고 대규모 투자와 생태계 조성에 노력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급성장한 YMTC 역시 중국 정부의 지원을 등에 업고 컸다. 이제는 반도체 산업을 개별 기업 단위가 아닌 국가 단위로 봐야 한다. 정부와 기업, 학계와 연구기관 등 반도체 산업의 전방위 생태계가 움직이지 않으면 초격차는 어렵다.


권동준기자 djkwon@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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