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보현우의 AI시대] 〈21〉비상계엄, 탄핵 그리고 AI 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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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보현우 서울대 산업공학과 객원교수·전 하나금융지주 그룹데이터총괄

2024년 12월 우리 주변을 둘러싼 최대 이슈는 '비상계엄'과 '탄핵'이었다. 대다수 국민이 예상치 못했던 사건인 만큼 그 충격은 컸다. 박정희 대통령이 시해된 1979년 10.26 사건 전후 선포된 비상계엄 후 무려 45년만의 계엄이었기에, 그리고 군부 독재 후 성공적으로 민주화를 이뤄낸 모범국가인 대한민국에서 벌어진 일이었기에 세계가 놀랄 수밖에 없었다. 총을 든 군인들의 국회 진입은 탄핵 역풍을 불러왔고, 대통령 탄핵으로 인한 직무집행 정지라는 국정 마비 사태가 이어졌다.

비상계엄과 탄핵, 이 두 사건은 우리 경제의 전 분야, 그리고 AI 산업에 이르기까지 부정적 파급효과를 가져오고 있다. 윤석열 정부에서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하고자 추진했던 역점 사업인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은 정치적 리스크로 인해 직격탄을 맞았다. AI 산업 측면에서는 그간 업계의 기대와 관심을 모았던 '인공지능 산업 육성 및 발전에 관한 법률'(이하 AI 기본법)의 국회 통과가 불확실한 상태다.

AI 기본법은 여야 합의에 의해 11월 26일 소관 상임위인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를 통과했으며, 12월 10일 법제사법위원회 체계자구 심사 후 본회의에서 처리될 예정이었다. 이미 여야 합의를 마쳤고, 정치적 쟁점이 없는 법안 중 하나였기 때문에 법안 통과가 유력했다. 그러나 비상계엄과 탄핵은 국회를 정쟁의 소용돌이로 몰아 넣었고, 법안 통과는 불확실해졌다.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AI 기본법은 22대 국회에서 발의된 19건의 법안을 병합한 안건이다. 이 법안에는 AI 기본계획의 수립과 시행, 국가AI위원회 설치, AI 전문인력 양성과 같은 산업 육성 및 진흥에 대한 내용과 더불어 고영향 인공지능에 대한 규제가 포함되어 있다. 또한 AI기본법은 한국의 AI 기업들이 글로벌 빅테크 기업과 대등한 위치에서 경쟁하기 위한 기본 윤리규범을 담고 있다.

'한 나라의 민주주의가 백척간두(百尺竿頭)에 서 있는데, AI가 대체 무슨 대수인가'라는 의견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사안의 경중은 있겠지만,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AI 산업은 중요하다. AI는 치열한 글로벌 경쟁 속에서 다음 세대의 운명을 가를 수 있는 핵심 산업이기 때문이다.

다행히 국회는 17일 AI기본법에 대한 법사위 심사를 마치고, 법안을 본회의에 회부했다. AI 기본법 제정의 '9부 능선'을 넘은 것이다. 이제 조속한 국회 본회의 의결을 통해 AI 산업 진흥을 위한 토대를 마련해야 한다.

AI 기본법 이외에도 국회에는 여야간 이견이 크지 않은 다수의 경제 법안이 계류되어 있다. 반도체 특별법, 국가 기간전력망 확충 특별법 등 우리 경제의 미래를 좌우할 법안들은 여야가 잠시 정쟁을 멈추고, 합심해 통과시켜야 한다.

보스턴컨설팅그룹(BCG)이 발표한 'AI 성숙도 매트릭스'(AI Maturity matrix)에 따르면 조사대상 73개국 중 한국의 AI 기술과 산업 수준은 2군(2nd tier)에 속하는 것으로 평가됐다. AI 선도국가(AI Pioneers)인 미국, 중국보다 뒤쳐진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그간 우리와 비슷한 수준으로 인식했던 영국, 싱가포르, 캐나다보다 아랫 단계로 평가 받았기에 충격이 크다. 보고서를 본 많은 이들은 우리가 한수 아래로 여겼던 말레이시아, 스페인과 비슷한 수준이라는 점에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정부가 지난 4월 'AI G3' 도약을 위한 AI·디지털 혁신성장 전략을 발표하고, 미국과 중국을 따라잡기 위한 거대한 포부를 밝혔기 때문에 아쉬움은 더 클 수밖에 없다.

AI 붐을 등에 업고 상승세를 이어가는 대만과 대조적으로 한국 증시는 정치적 리스크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이로 인해 유가증권시장과 코스닥시장을 합친 한국 기업의 시가총액은 대만 증시와 비교하여 1조 달러 (약 1400조원) 수준으로 벌어졌다. 대만 자취안(加權) 지수가 올해 약 30% 상승한 반면, 코스피 지수가 10% 가까이 떨어진 탓이다. 대만의 TSMC가 주요 빅테크 기업의 주문을 독식하며 AI 반도체 공급망의 주도권을 잡은 반면, AI 산업에서 우리 기업들의 성과가 미흡한 탓이다.

AI기본법은 정치적 이슈가 없고, 여야간 분쟁의 소지가 적은 법안이다. 이제 정치적으로 중요한 판단은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으로 넘어간 만큼, 여야는 AI기본법을 비롯 경제, 민생에 중요한 법안을 지체 없이 통과시켜야 한다. 더이상 정치가 경제의 발목을 잡아서는 안된다. AI 산업 도약을 위해 국민과 정치권이 힘을 합쳐야 할 때다.


김원배 기자 adolfkim@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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