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시론] '인플레이션 감축법'으로 본 美 전기차산업 육성 전략

美서 조립한 車만 세액 공제
보조금 혜택 대상 대폭 축소
현대차, 美 시장 선점 위해
부품업체 전동화 서둘러야

미국 정부가 물가 상승을 억제한다는 명분 아래 전기차산업 육성을 위한 밑그림을 마무리했다. 중국과 패권 경쟁에 불을 붙인 트럼프 행정부는 자동차산업 패러다임 전환에도 연비 규제를 완화했다. 이 때문에 미국 소비자의 전기차 구매가 부진해 지난해 미국 전기차 판매는 중국의 5분의 1에도 못 미쳤다. 세계 최대 전기차업체인 테슬라가 전기차 시장을 누비고 있는 것이 무색할 정도다.

하지만 유가가 치솟자 미국 시장에서 전기차 판매가 급증했다. 올해 상반기에는 순수 전기차만 작년 동기 대비 66% 증가한 37만대가 팔려 5.6%의 시장 점유율을 기록했다. 업체별로는 테슬라가 전기차 시장의 70%를 장악했으며, 현대차·기아가 9%로 2위를 차지했다.

최근 미국 정부가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을 제정해 전기차 수입을 억제하면서 자국의 자동차 3사인 제너럴모터스(GM), 포드, 테슬라에 유리한 환경을 조성했다. 미국 자동차업계가 법안에 대해 불만을 토로하고 있지만, 단기적으로 미국 정부의 세액 공제를 받을 수 있는 차종 21개 중 미국업체 모델로 분류할 수 있는 차종이 13개다. 업체별로는 포드 6개, 리비안 3개, 루시드 1개에 더해 주인만 다를 뿐 미국기업이나 다름없는 크라이슬러 3개 차종을 포함한 수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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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에 유럽업체 중에서 세액 공제를 받을 수 있는 차종은 BMW 3개, 아우디·볼보·벤츠 각각 1개로 감소했다. 아시아업체 중에서는 닛산 2개 차종만이 세액 공제를 받을 수 있다. 브랜드당 20만대로 묶어 놓은 공제 상한 물량이 풀리면 GM은 6개, 테슬라는 4개 차종이 세액 공제 대상이 될 수 있다. 가히 미국업체에 유리한 법안이라 할 수 있다.

미국 정부는 고소득자에게는 세액을 공제해주지 않기로 했는데, 개인 소득 15만달러, 부부 합산 소득이 30만달러를 넘는 소비자가 전기차를 구매하면 혜택을 받을 수 없다. 또 2023년부터 판매 가격이 5만5000달러를 상회하는 전기 승용차와 8만달러를 넘는 픽업트럭 및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은 세액 공제 대상에서 제외했다. 반면에 판매 가격이 2만5000달러 미만 중고차 구매자에게는 최대 4000달러의 세액을 공제하고, 중량 1.4만파운드(6328㎏) 미만 비 내연기관 상용차를 구매하는 경우 7500달러, 그 이상 중량의 상용차를 구매하는 소비자에게는 최대 4만달러까지 세액을 공제할 계획이다.

그동안 미국은 전기차 구매 기본 세액 공제 2500달러와 배터리 용량에 따른 차등 공제 최대 5000달러를 합해 7500달러 세액 공제 혜택을 부여해 왔다. 그러나 바이든 대통령이 법안에 서명한 8월 16일 이후 북미에서 조립한 전기차에 대해서만 세액을 공제하기로 했다. 2023년부터는 세액 공제의 절반은 미국과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한 국가에서 채굴하고 제련한 배터리 핵심 광물 사용 비율에 따라, 나머지 절반은 북미산 배터리 부품 사용 비율에 따라 차등 지원하는 원산지 규정을 도입했다.

전기차의 심장인 배터리에 사용하는 핵심 광물은 2023년부터 미국, 캐나다, 호주, 칠레 등 국가에서 채굴·제련한 광물을 40% 이상 사용하고, 점진적으로 비율을 높여 2027년에는 80%를 사용해야 절반의 세액 공제를 받을 수 있다. 배터리 부품 역시 북미산 사용 비율을 2023년에는 50% 이상, 2029년에는 100%로 높여야 나머지 절반의 세액 공제를 받을 수 있다. 배터리업체는 전전긍긍할 수밖에 없다. 미국 정부는 평균 판매 가격이 6만6000달러를 넘어선 전기차 구매자들의 부담을 덜어주고 2030년 신차 판매의 50%를 전기동력차가 차지할 수 있도록 2032년까지 차등적인 세액 공제 제도를 유지해 나갈 방침이다.

미국 정부는 소비자가 전기차 구매의 걸림돌로 지적해 온 충전의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해 충전 하부구조를 대폭 확충할 계획이다. 이미 미국 정부는 지난해 발표한 하부구조법에서 전기차 충전 하부구조 구축에 75억달러를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법안에서 미국 정부는 충전기 설치 비용 세액 공제를 최대 3만달러에서 10만달러로 확대했다. 현재 12만4000기 공공 충전기를 2030년까지 50만기로 확충하기 위해 향후 10년간 충전기 제조업체와 대체 연료장비 제조업체에 17억달러 세액을 공제해 줄 계획이다.

미국 정부는 지역별 전기차 보급 격차를 완화하기 위해 주 정부에 대한 충전기 설치 지원 예산도 차별화할 예정이다. 공공기관의 전기차 구매를 촉진하기 위한 일환으로 미국 우체국이 전기차와 충전 관련 기기를 구매하는 데에도 30억달러 보조금을 지원하기로 했다. 이와 함께 태양광 패널 장비 등 자국 내 생산을 촉진하기 위해 600억달러를 지원하고, 청정기술 프로젝트 사업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그린 뱅크에 270억달러를 투자하기로 했다.

미국 정부의 지원에도 전문가들은 민간 자본이 이들 분야에 투자해야만 미국이 2030년 탄소 배출량을 2005년 대비 40% 감축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실리콘밸리은행은 지난해 미국 내 기후변화 대응기술 기업에 대한 벤처캐피털 투자가 전년 대비 80% 증가한 560억달러에 달한 것으로 분석했다.

올해 상반기에는 금리 상승으로 인해 창업 초기 기업에 대한 투자가 감소해 민간 투자를 촉진할 수 있을지는 불확실한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특히 청정기술 기업 투자는 장기적 차원에서 대규모로 이뤄져야 하는데, 민간 투자가들이 인식을 전환하지 않으면 10년 전 실패를 답습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당시 미국 태양광 패널 제조업체를 비롯한 다수의 청정기술 업체들이 화석연료 가격 하락과 중국 업체와의 경쟁에서 밀려 도산한 바 있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전기차 핵심 광물과 부품의 중국 의존도가 높은 현실에서 미국의 조치가 무모하다고 평가한다. 그러나 미국은 수년 전부터 전기차 핵심 광물 보유국이자 자유무역협정 체결국인 캐나다, 호주, 칠레와 광물 공급을 위한 논의와 검토를 이어 왔다. 환경보호 단체 반대에도 자국 광산 개발도 추진하고 있다. 이처럼 미국은 자국과 우호 관계를 유지하면서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하고 있는 자원 부국과의 협력을 통해 전기차 핵심 광물 중국 의존도를 낮추고 저가 중국산 배터리 부품 수입을 억제할 전망이다.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이 미 의회 중간 선거용이라는 평가도 있지만 조 바이든 대통령은 대통령 행정명령 권한을 발동해 기후위기 극복과 탄소중립 달성을 위한 재생에너지 전환을 가속할 수 있는 새로운 제도를 추가로 도입할 것으로 예상된다. 얼마 전 미 대법원이 환경보호청(EPA) 규제 권한을 축소했지만, 미 정부가 내년에 새로운 연비 규정을 발표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전술한 바와 같이 현대차그룹은 단기간 내에 미국 전기차 시장에서 점유율 2위 업체로 올라섰다. 또 2025년까지 미국에 제3공장을 건설해 전기차를 생산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미국 정부가 당장 미국 내에서 조립한 전기차에만 세액을 공제하기로 하자 현대차는 신규 공장 건설을 앞당기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물론 현대차그룹이 미국 전기차시장 선점 효과를 유지하기 위해 노사 합의를 거쳐 미국 내 기존 내연기관차 생산라인을 전기차 생산라인으로 전환하고 전기차를 조기에 생산할 수도 있다. 이를 위해서는 완성차업체가 미국 내에서 전기차를 효율적으로 생산하기 위해서는 동반 진출한 국내 부품업체의 빠른 전환이 필요하다. 1985년 이후 2022년 상반기까지 국내 자동차업체의 북미 3국 직접투자 건수는 298건에 달했다. 현대차가 미국 앨라배마주 공장 건설에 착수한 다음 해인 2003년 이후 국내 부품업체들은 미국에 신규법인 49개를 설립해 6억3700만달러를 투자했다. 멕시코에는 2007년 이후 25개 신규법인을 설립해 10억달러를 투자했고, 캐나다에는 2012년 이후 2개 신규 법인 설립에 2300만달러를 투자했다.

업체 대부분이 내연기관 부품을 생산하고 있어 전기차 부품 생산으로 전환하려면 시간과 자금이 필요하다. 국내 배터리업체도 미국에 생산 공장을 보유하고 있지만 핵심 광물이나 부품을 변경하기가 쉽지 않다. 따라서 정부가 다자간과 쌍무 간 채널을 통해 우리 자동차업체와 배터리업체들의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조치해야 한다. 현대차그룹 노사는 전기차 대미 수출이 막힌 상황에서 신속히 미국에서 전기차를 생산할 수 있도록 중지를 모아야 한다. 중국 시장에서 고전하는 국내 자동차업계가 미국 전기차시장에서도 밀려나면 성장기반이 약화할 수 있다는 인식에서 노사정이 힘을 합쳐 위기를 기회로 바꿔 나가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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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항구 호서대 기계자동차공학부 조교수

○…이항구 교수는 1987년부터 산업연구원에 근무하며 자동차산업 연구를 담당했다. 2020년부터 한국자동차연구원 연구위원으로 근무하면서 호서대 조교수를 겸하고 있다. 친환경자동차 보급뿐만 아니라 기업 간 협업법 제정, 상생결제시스템 구축에 기여했다. 기획재정부 재정사업평가위원, 국토교통부 자율주행자동차 융복합 미래포럼 위원, 중소벤처기업부 규제 특구 자문위원, 환경부 WTO '무역과 지속가능 환경협의체'(TESSD) 대응 TF 위원, 인베스트 코리아 자문위원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항구 호서대 기계자동차공학부 조교수 hglee@katech.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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