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톡]인텔 CEO가 부럽다

삼성과 TSMC가 뿔났다. 인텔 때문이다. 지난해 팻 겔싱어 인텔 CEO의 언행은 삼성과 TSMC의 심기를 끊임없이 불편하게 했다. 미국 정부를 의식한 '자국 기업 중심 지원 요구'가 대표 사례다. 겔싱어 CEO는 “인텔은 미국에서 유일하게 반도체를 직접 설계하고 생산하는 기업”이라며 “지식재산(IP)을 지키려면 삼성전자나 TSMC보다 미국 반도체 기업을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 정부가 자국에 반도체 공장을 짓는 기업을 지원하기 위해 마련할 520억달러 규모의 지원금을 노린 듯하다.

삼성과 TSMC는 반박했다. 외국 기업도 미국 기업과 동등한 지원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국적과 관계없이 모두가 '공정한 운동장'에서 경쟁하게 해 달라고 미국 정부에 요청했다. 두 회사가 미국에 반도체 공장을 건설하기로 한 배경에는 미국 정부의 압박 아닌 압박이 있었다는 걸 고려하면 충분히 납득할 만하다.

겉으로 보면 미국 정부 지원금을 둘러싼 기업 각축전이다. 그러나 현 상황에서 읽히는 또 다른 행간은 우리를 안타깝게 한다. 이들 기업의 상호 견제가 반도체 산업을 향한 미국 정부의 강력한 지원 정책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미국은 일찌감치 반도체 산업이 국가 안보와 직결된 전략 산업이라고 인식했다. 중국의 반도체 굴기가 시작될 무렵부터다. 반도체 공급난은 이런 인식을 확신으로 바꾸어 놓았다. '세액 공제'라는 당근을 흔들며 외국기업의 반도체 생산 공장을 유치하려는 이유다. 아시아에 견줘 열악한 반도체 생산 환경을 보완해 전략 산업 경쟁력을 끌어올리려는 시도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공식석상에서 웨이퍼를 들고 흔든 것도 단순한 보여주기식은 아니었다.

반면 우리나라는 여전히 안일하다. 반도체 산업의 특수성을 인지하지 못하고 여러 명분을 앞세워 기업의 투자 의지를 꺾어 놓는다. 외국 기업의 투자 유치는 고사하고 국내 기업도 발목이 잡혀 있다. 각종 규제와 부처 이해관계로 반도체 육성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미국과 유럽이 반도체 설비 투자에 40% 세액 공제라는 카드를 꺼내들 때 우리는 그 절반도 못 올리는 상황이다. 일각에서는 산업 간 형평성도 감안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미국과 유럽은 형평성을 무시해서 반도체 지원을 골자로 한 '칩법'을 쏟아내는 것일까.

다음 달이면 정부가 'K-반도체 전략'을 발표한 지 1년이 된다. 여전히 우리는 누가 더 많은 지원을 받느냐가 아니라 지원을 받을 수 있나로 다툰다. 빠르게 진화하는 반도체 기술처럼 시장 상황도 급변했다. 삼성과 TSMC, 인텔이 정부 지원을 두고 치열하게 경쟁하는 미국은 시쳇말로 '노는 물'이 달라졌다. 말뿐인 반도체 육성 정책으로는 행동하는 선진국을 앞지를 수 없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수장이 “한국 기업을 우선 지원해야 한다”고 요구하는 날이 올지 의문이다. 지원할 것이 없는 상황에서 우선주의를 외치는 건 어불성설이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취임 후 국무회의 자리에서 반도체 웨이퍼를 들고 흔들지 않는 한 쉽지 않은 일이다. 자국 기업부터 챙겨 달라고 말할 수 있는 인텔 CEO가 부러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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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동준기자 djkwon@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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