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자정보통신산업진흥회(KEA)는 지난 2019년 전자산업 60주년을 맞아 청소년과 일반인을 대상으로 '미래생활 그리기 공모전'을 열었다. 당시 수상작은 지금도 KEA 사옥 복도에 전시돼 있다. 업무상 바쁘게 오가다가 잠깐 멈춰 서서 그림을 보고 있으면 그림 속 미래처럼 누군가의 상상에서 출발했을 자율주행차 같은 미래형 자동차가 지금 눈앞에 성큼 와 있다는 사실에 새삼 놀란다.
2015년 9월 독일에서 발생한 이른바 '디젤게이트'로 촉발된 자동차 환경규제 강화는 내연기관 종말과 친환경차 서막을 알리게 되는 계기가 됐다. 시장분석업체 블룸버그는 올해 세계 전기차 판매량이 작년(660만대)보다 60% 증가한 1050만대로 가파르게 상승해 전체 자동차 시장의 14%를 차지할 것으로 내다봤다. 탄소중립 이슈로 정부 규제 확대, 환경을 바라보는 관심, 친환경차 경험 대중화와 맞물려 친환경차 시장 성장 속도는 점점 더 빨라질 것으로 전망된다.
자율주행차 시장도 레벨2에 이어 레벨3 상용화도 가시권 안으로 들어왔다. 자율주행 기술 발전에 따른 신규 차량 수요 증가분을 비롯해 소유보다는 공유로 옮겨 가는 것으로 보였던 차량 패러다임이 코로나로 인한 감염 우려 등으로 다시 소유로 복귀했다. 그러면서 발생한 수요 증가로 세계 경기의 극단적 수준 침체에도 자동차 산업은 전에 없는 성장 동력을 얻었다. 코로나로 인해 촉발된 비대면 무인 수요와 이에 따른 자율주행 기술 발전은 이후에도 꾸준한 수요 견인 요소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우리 정부가 발표한 '자동차 부품기업 미래차 전환 지원 전략'에 따르면 내연기관 부품·소재의 국산화율은 99% 수준이지만 미래차 부품·소재 국산화율은 70% 미만으로 공급망 안정성에서 취약성을 드러냈다. 특히 자율주행 부품과 차량용 반도체 기술 역량이 크게 부족(선진국 대비 자율주행 부품 기술 수준 80~90%, 차량용 반도체 50%)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연간 346만대 차량을 생산하며 세계 5위의 자동차 생산량을 기록한 대한민국 위상에 비하면 다소 안타까운 현실이라 할 수 있다. 코로나 상황으로 인한 와이어링 하니스 부품 수급 문제, 반도체 공급 대란으로 인한 생산계획 차질뿐만 아니라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으로 인한 유럽발 공급 문제 등에 크게 흔들리는 상황도 원인은 여기에서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일부 인기 차종의 경우 신차 출고까지 1년 반 이상이 소요된다는 뉴스는 불가항력적 이슈에 국내 자동차 산업이 얼마나 취약한지를 보여 주는 단적인 예시다.
부품 공급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인력 수급이다. 단어 그대로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산업과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성장을 뒷받침할 양질의 인력 공급이지만 자동차 분야 인력 공급도 빠르게 늘어나는 수요를 감당하지 못하고 있다. 올해 초 발표된 '유망 신산업 산업기술 인력 전망'에 따르면 미래형 자동차 분야 산업기술 인력은 연평균 4% 증가하여 2030년에는 10만명을 상회할 것으로 전망된다. 해당 인력 공급은 매우 부족한 실정이다. 특히 기존 자동차 산업군이 친환경차(xEV)·자율주행차와 같은 미래자동차 산업으로 빠르게 변화하고 있으나 시장에 대응할 수 있는 기술을 갖춘 인력은 부족하다. 이 때문에 변화에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현장의 목소리가 높다.
기업이 실제 필요로 하는 전기차나 자율주행, AI, SW 등 수요기술의 실무 지식을 갖춘 인력을 구하기가 매우 어렵다. 심각한 구인난에 시달리고 있다는 관련 기업의 목소리에도 인력을 전문적으로 육성할 수 있는 토대가 미흡한 것이 현실이다.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인재'다. 코로나 사태를 겪으며 자동차 산업이 얻은 가장 큰 교훈은 효율성의 이름으로 구성되어 온 글로벌 공급망이 가진 근원적 한계이다. 핵심기술, 핵심부품 종속성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오늘날과 같은 문제는 언제든 재발할 수 있다. 피해 역시 산업계가 고스란히 감당할 수밖에 없다. 산업계가 요구하는 실무 경험을 갖춘 인재 양성은 장기 계획과 체계적인 커리큘럼 운영이 필수적인 만큼 산·학·연뿐만 아니라 정부 차원에서 집중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 대학에서 배출되는 신규 인력뿐만 아니라 기존 자동차 산업의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미래차 분야에서도 새 가능성을 열어 갈 수 있는 재직자까지 미래차 산업 전반에 걸친 인력 수요에 촘촘히 대응할 수 있는 정부 지원이 절실한 상황이다.
자동차 산업의 인력수급 문제 대응을 위해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학부생부터 석·박사, 재직자와 실직자까지 고용 분야별 맞춤형 인력양성 프로그램 지원 정책은 미래차 분야 국가 경쟁력을 확보하는 마중물이 될 것이라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그러나 미래차 산업의 인력 수요를 감당하기엔 역부족이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장기적인 투자가 필요한 교육 특성상 더 장기적이고 규모 있는 지원을 통해 산업에 충분히 기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인력 수요처인 기업의 목소리를 반영해 현장실무 경쟁력을 갖춘 인재가 양성되도록 내실을 다질 필요가 있다.
'2020년 주요 자동차 그룹의 R&D 투자 동향과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세계 13개 자동차 그룹 가운데 매출액 4위인 현대자동차 그룹이 R&D 투자 규모에선 10위에 그쳤다. 최근 신규 R&D 필요성을 인식하고 관련 투자에 집중한 결과 뉴스위크가 선정한 '세계 자동차 산업의 위대한 파괴적 혁신가들' 시상식에서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올해의 비저너리(Visionary)상'을 받았다는 뉴스는 고무적이다.
자율주행이라고 일컬을 수 있는 레벨3 이상의 자율주행 차량 양산을 준비하고 있는 지금이야말로 미래차로 환골탈태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다. 미래차 시대를 선도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잘 훈련된 인재와 이를 바탕으로 탄탄한 기본기를 갖춘 산업계의 체력이다. 산·학·연·관이 촘촘히 협력해 만들어낼 미래차 산업의 '미래'를 기대해본다.
박청원 한국전자정보통신산업진흥회 상근부회장 cwpark9@gokea.org
○박청원 부회장은…
부산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밴더빌트대 경제학 석사, 건국대 공학(신기술융합)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제27회 행정고시 합격을 통해 공직에 입문해 산업통상자원부 기획조정실장·산업정책실장·대변인, 방위사업청 차장을 지냈다. 제7대 전자부품연구원(KETI) 원장, 건국대 특임교수를 거쳐 현재 한국전자정보통신산업진흥회(KEA) 상근부회장직을 맡고 있다.
국내 미래차 기술 수준 현황